밤하늘 언덕에 풀을 몰고 다니던 염소들 휘파람을 불며 연애편지를 쓰던 동네 오라버니들 평상을 펴고 누워 부채를 부치던 노친네들 멀리멀리까지 끓어 넘치던 호박 넣은 수제비 국물이 놓인 화덕 매일매일 우물로 걸레를 빨러 나오던 노망난 할망구 소를 우리는 냄새가 진득하던 마을 입구에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장티푸스를 앓던 아이는 그 앞에 등을 내밀고 엎드려 있었다 멀리멀리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철도로 난 풀을 밟고 기차가 사라질 때 그 독하던 풀 냄새 장티푸스를 앓던 귀로 코로 몰려오던 자지러지던 것들 귓병을 앓으며 매일매일 항생제를 귀에 넣고 다니던 술집 여자 뚱뚱한 중국 남자가 끓이던 우울한 우동 웃는 얼굴로 되를 속이던 짠 된장 상투를 튼 싸전 영감 벼멸구를 잡아 불태우던 연기를 향해 퉤퉤 뱉던 동사무소에 댕기던 안경잡이 집문서를 팔아 여당 지방사무소 소장을 하던 위인 농업실험실 과수원에서 자두에 접붙인 수박을 만든다던 폐병쟁이 막 된장에 무친 날 내 나는 나물 잘게 썬 풋고추를 넣고 조린 피라미 호박잎에 싼 은어 회 날게 생긴 오이에 약 든 쇠고기를 잘게 썰어 익힌 오이찜 짠 멸치젓을 넣어 만든 쓴 물 나던 고들빼기 너덜너덜한 처녑을 끓여 참기름장에 곁들이던 겨울날 할아버지의 술상 자진자진 햇살에 말라가던 고구마, 박, 꿈으로 생으로 들어오는 그러다 달이 휘영청 떴지요 아직 복숭아나무 아래 배를 깔고 아이가 달을 바라 보았지요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돌아올 까닭, 딱히 있는 건 아니었지만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옛일들은 아무리 후진 일들이더라도 묘한 향수를 불러온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시절만의 그림이라서 그럴까. 불행이라는 어둠조차도 무채색이 가진 평온한 음영으로 바뀌곤 한다. 그 시절을 겪지 못했던 세대의 사람들은 그 시절의 이야깃거리가 신기하기만 하다. 시인이 적어 놓은 ‘벼멸구를 잡아 불태우던 연기’ 며 ‘잘게 썬 풋고추를 넣고 조린 피라미’ 반찬이랑 ‘호박잎에 싼 은어 회’ 등은 지금껏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들인데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인의 ‘자진자진 햇살’이란 시어도 참 좋다. 어린 날 시인의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며 그의 추억 속에서 함께 거닐어 본 시간이기도 했다.<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