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감정선은 느슨한 듯 팽팽하다
말랑하면 재미없고 단단하면 짜증나는 좀체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
고분하게 만드는 소리 빗소리, 마침내 손잡게 하는
넌 샌들을 신고 난 장화를 신고 추적이는 빗속으로 스민다
어제는 너무 멀리 있었지만 오늘은 서로 가까운
이런 날은
물을 필요 없이 에스프레소 두 잔
에티오피아의 어린 땀방울을 착즙해 쓰기도 달기도 한
네 말과 친해지고 싶다
너는 쓴맛을 오래 봤다고 했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 말문 닫아걸고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믿지 않기로 했다고 말의 모서리에 둥지 틀고 쓴맛을 달이는 중이라고 했다
답답한 것은 나였을까 너였을까
어제는 빙하 속 추위로 벽을 치다가
오늘은 수밀도 높은 목소리로 에스프레소를 시키는 너
비만 오면 찔끔찔끔
쓴맛을 복습한다
산수유 꽃은 피려고 하는데 진달래 망울도 곧 터지는데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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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모니카 수필가 |
커피 중에 가장 진한 맛이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의 쓴 맛이 마치 삶의 아픈 맛처럼 느껴진다. 시인의 ‘너는 쓴맛을 오래 봤다고 했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 말문 닫아걸고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믿지 않기로 했다고 말의 모서리에 둥지 틀고 쓴맛을 달이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 아픔이 진해질 때 그보다 더 진한 에스프레소의 쓴 맛으로 세상사의 쓴 맛을 희석시키려 했을 것이다. 야성을 ‘고분하게 만드는 소리 빗소리, 마침내 손잡게 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위로의 마력(魔力)을 발휘했을 것이다. 목 넘김이 쓴 맛으로 넘칠 때 창문 밖에 내리는 빗물이 그 쓴 맛을 순화시켜 주었을 것이다. 사는 일이 팍팍하고 힘들어지면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보러 갈 일이다. 비 오는 날에 갈 일이다. 그럴 때 내 말에 귀 기울여 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비 오는 날엔 에스프레소’란 제목이 묘하게 가슴을 타고 내린다. 왠지 모를 격려처럼 들린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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