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구 년째안방에서 거처하는 장롱 안에는오래된 염전이 숨어있다해마다 바닷물이 그득히 들어차이불을 적시고 옷들을 적시고그렇게 적시고 말리고를 반복하더니이윽고 투명한 결정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따가운 햇볕 한 번 쬔 적 없어도빠른 속도로 풍화되어가는이불장과 옷장의 허물어진 틈으로사각거리며 소금이 떨어져 내린다눈부신 소금밭을 걸어 들어가파도소리 아직 떠나지 않은 서랍을 열면아, 놀라워라가난하고 고단한 영혼을 위해조신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무구한 계절을 건너왔을 맑은 얼굴들이 보인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안방에 거처하는 장롱 안에는 온갖 사연이 다 숨어있다. 버려야 할 것도, 간직해야할 곳도 있어 그것을 염전이라 부르고 있다. 오래 된 염전의 사건과 일거리와 그들의 삶의 갖가지 색이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염전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사일 것이다. 염전이라는 곳은, 여과를 끝낸 증발지 바닷물이 대기하고 있다가 결정지에서 염도를 더 익힌 후 소금이라는 육체를 만들어낸다. 염전에서 소금이 만들어지기 까지 과정이 너무나 까다로워서 우리네 힘든 삶의 여정처럼 느껴졌나 보다. 장롱에 걸린 옷들은 하루 종일 함께 걷고 함께 견디며 육신의 고통을 같이 감당했을 터이고. 소금에 나오는 맛들이 달라서 인생에 짠맛만 아닌 것을 알리고 싶을 것이다. 장롱을 가득 채운 이불들은 그들의 고달픔을 잠 속으로 끌어들여 같이 했을 것이었다. 그곳에서 삶의 짜디짠 소금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다. 소금의 맛은 난치지역을 거치고 늦태 지역을 지나오면서 채취지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맛을 낸다고 했다. 그러기에 소금 맛이 그렇게 오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고단함을 이겨낸 맛, 고통을 지나온 맛, 실패를 버티어낸 맛,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맛까지 다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무구한 계절을 건너 온 맑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장롱 안에 걸린 옷들을 살피며 그 옷들이 걸어온 길들을 조심스레 새기며 맛보듯이 다시 장롱 속의 염전을 들여다봐야겠다.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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