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근교산행을 했다. 오전 9시, 이동에 모인 산벗 일행은 가까운 경주 남산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일행 3명 중 후배 1명은 게스트로 참석했다. 경주 남산에 가는 날이면 김밥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열반재 아래 청룡사지 절터 옆에 단골식당(녹원정사)이 있기 때문이다. 차는 용장골로 향한다. 10시에 용장사곡 입구 찻집 달작에 도착했다. 찻집 뜰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서 원기회복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어준다는 달작차의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달작은 사장이 약선차를 직접 팔면서 약차 만드는 법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는 곳이다. 메뉴를 보니 달작차 외에도 대감차(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자쌍화차(피로회복은 면역력 강화로부터), 청폐차(기관지 폐를 튼튼하게), 오매차(노폐물 배출은 해독으로부터), 달콩차(튼튼한 콩팥을 위하여), 명안차(맑고 건강한 눈을 위하여), 온기차(온 몸을 따뜻하게), 위편차(편안한 속을 위하여), 쾌비차(코와 기관지를 시원하게), 장생차(심혈관을 깨끗하고 튼튼하게)와 핸드드립 커피도 있었다. 차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물어본 뒤 찻집을 나와 공원지킴터를 지나 천천히 산을 오른다. 시간을 보니 10시 40분. 입구 팻말은 금오봉까지 3.1Km라고 알려준다. 산행은 용장공원지킴터에서 출렁다리를 통과한 후 용장곡을 따라 설잠교, 석조여래좌상과 마애여래좌상, 용장사곡 3층석탑, 삼릉곡 연화대좌, 금오봉으로 가는 임도에서 설잠교까지 되돌아와서 우측 이영재 방향으로 올라 산정호수, 고위봉, 열반재, 녹원정사에서 점심을 먹고 열반재, 용장골 관음사, 천우사, 달작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용장곡은 남산의 50여 개 골짜기 중 한 곳으로 신라시대에 용장사(茸長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계곡의 길이가 약 3Km로 남산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골짜기다. 용장곡에는 약 22개소의 절터가 확인되고 있지만 용장사를 제외하고 이름을 알 수 없다.이곳에는 생육신의 한 분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곳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峯), 법호는 설잠(雪岑), 관향은 강릉이다.
매월당이 21세 때인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자 읽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방랑길에 올랐는데, 29세 때 용장에 들어와 7년간 은적암에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집필한 다음 충남 부여 무량사에서 후학을 지도하다가 59세(1493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경주 남산은 신라시대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산으로 노천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전날 밤에 봄비가 내려선지 계곡에 제법 물이 흘러내린다.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계곡을 따라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계곡 군데군데에는 아직도 얼음이 꽁꽁 얼어있다. 설잠교를 지나면 우거진 숲 사이로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대현스님이 법상종을 개창했던 사찰이었는데 절터에 ‘용장사’라고 적힌 기와가 발견되어 이름을 알았다고 한다. 대숲을 지나 계속 걷다보면 용장사터가 있다. 절터에 서면 고위봉이 가까이 보인다. 산 전체를 볼려면 산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인생에서도 가끔씩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187호)이 나온다.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머리부분이 훼손되고 없지만, 왼쪽 어깨 위에 부처의 옷인 가사와 옷을 고정하는 끈과 매듭이 새겨져 있다. 옷자락은 무릎 아래로 흘러 대좌를 덮고 있다. 손 모양은 일반적인 손 위치와는 반대로 왼손을 손바닥 아래로 하여 왼 무릎 위에,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다리 위에 두었다. 대좌는 자연암반 위에 원반 모양의 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다고 한다.
석조여래좌상 뒤 자연암벽에는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이 조각되어 있다. 눈, 코, 입이 뚜렷하게 새겨진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977년 또는 102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을 뒤로하고 개인과 단체 사진을 찍고 주변을 감상한 후 계속 산을 오른다. 암벽 사이로 난 좁은 계단을 따라 오르니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186호)이다. 자연암반을 다듬어 몸돌을 올린 형태로 산 전체에 세울 자리를 마련하고, 1층으로 된 바닥돌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렸다. 무너져 절터 아래쪽 계곡에 흩어져 있던 돌을 모아 1922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삼층석탑을 용장곡 아래서 올려다보면 하늘 끝에 닿아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 아닐까 싶다.
산벗들은 푸른 봄하늘과 건너편 산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여러 위치에서 삼층석탑을 사진으로 남긴다. 안내 팻말을 보니 삼층석탑에서 금오봉까지 0.9Km다. 팻말 옆에 선 소나무가 신라 천년의 정기를 받아서 기상이 넘친다.
삼층석탑을 벗어나 능선에 오르니, 절단된 화강암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소나무가 양쪽으로 우거진 산등성이를 따라 계속 걸으니 남산을 가로 지르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 세워진 ‘비파골의 전설’ 안내판을 읽어본다. 금오봉은 평소에 너무 자주 가던 곳이라 가지 않고 올랐던 곳으로 되돌아 내려온다.
설잠교까지 내려와서 우측 이영재 방향으로 오르막길을 1시간 이상 걸어서 산정호수에 다다랗다. 백운재 아래에 있는 저수지인 산정호수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이윽고 백운재에 도착했다. 게스트로 참여한 후배가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에 선배는 고위봉이 코앞이라면서 걸음을 계속했다. 부지런히 15분쯤 걷다보니 고위봉이다. 쉬지않고 산불초소를 지나 30여 분 걸어 내려오니 열반재 능선이다. 열반재에서 천룡사지터가 자리잡은 녹원정사(식당)로 향하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로 빽빽한 힐링코스다. 눈이 맑아지고 막혔던 코와 귀가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길은 천천히 걸어야 힐링이 된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30분. 맛있는 정식(비빔밥)과 손두부를 시켜먹고 따뜻한 숭늉 한사발을 들이키니 땀흘리며 걸었던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등산을 하면서 가끔씩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행을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느냐,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존 러스킨은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 사람의 기쁨은 결코 가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녹원정사 마루에 앉아 따스한 봄햇살을 맞으며 과일 한 조각과 물 한 잔을 마시는 잠깐의 휴식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과 인사를 나누고 나오다 식당 뒤뜰에 핀 봄의 전령사 ‘복수초’ 감상을 한다. 봄은 남산 자락에 이미 와 있었다.
일행은 열반재를 지나 용장골로 내려온다. 관음사, 천우사를 거쳐 달작찻집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 언제부턴가 산을 오르면서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는 조금씩 머무르면서 느끼고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이런 여유는 훗날 추억의 서랍에서 수시로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오래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수록 몸의 시간이 젊어지도록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신께서 내려준 하루라는 선물에 감사함을 느끼며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