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은 깜박, 깜박 얇은 잠을 뒤척이고 담배가게 용길이 할머니도난로가에 앉아 선잠을 데우십니다젊은 아버지 퇴근길의 휘파람처럼눈발이 골목을 길게 휘감으며어깨 좁은 이웃들의 안부를 묻는 저녁입니다어머니 시집올 때 해오셨다는자개 상 위에서 서둘러 맞는 저녁아버지가 좋아하셨다는 냉이국을 두 쌍의 수저가 어깨 세워 사이좋게달그락거리고, 바닥에 가라앉은 뿌리마저 훌훌 들여 마시면, 한 그릇으로도 가득 넘치는 봄, 난 아버지의 봄마저 마십니다멀리 계신 아버지, 마당 한쪽에싸륵싸륵 눈 쌓이는 소리로 안부를 전하면 꽃 시절 그리운 어머니는먼 나라로 길을 나서듯 뜨개질을 하시는데 조개껍질 안으로 영겁을 지낸 순한 짐승들이 날고꽃구름 사이로 볼 붉은 아이들이 뛰어다닐 때먼 나라에서 어깨 나란히 걷는하이칼라의 젊은 아버지와하이힐, 나팔바지의 어머니밤이 깊을수록 아버지의 안부는 선명해지고 어머니는 미닫이에 걸린 달빛으로한 땀 한 땀 봄을 깁고내일쯤 나는 다시, 젊은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겠습니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선명한 획으로 한 폭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만 같다. 그 붓이 가는 길을 따라가게 된다. 필체의 굵은 선이 상상의 세계로 잡아끈다.젊은 날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이 있는 어느 겨울날의 따뜻한 방 안에 차려진 저녁상. ‘싸륵싸륵 눈 쌓이는 소리’ 들리는 창문 밖에서 그 가족의 정겨움을 들여다보게 한다. 아버지는 봄을 마시듯 ‘냉이국’을 훌훌 마시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 그 ‘꽃 시절 그리운 어머니’는 이미 멀리 떠난 남편의 길을 따라가듯 뜨개질을 한다. ‘ 미닫이에 걸린 달빛으로 한 땀 한 땀 봄을 깁고’ 있는 어머니의 그리움을 바라보는 시인도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냉이국을 끓일 수있는 계절이 오면 더욱 그렇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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