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는 왠지 늘 가슴에 아린다. 무엇인가 덜 해 준 것만 같아 큰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그런 큰 아이가 강원도 화천에 배치받아 노심초사했던 시간이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최전방에 배치되어 영하 22도에 체감온도 영하 30도라는 일기예보를 접하면 늘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입대 9개월만에 처음 휴가를 나온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벌써 큰 아이와 함께 할 계획을 짜며 기대에 들떴다. 9박 10일의 첫 휴가, 아들은 휴가 기간 중 3일을 우리와 함께 하는데 하루는 부산 할아버지 집에서 보내고 하루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다시 서울에 올라간다고 한다. 첫 휴가라 보고 싶은 친구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3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휴가를 나와 서울에서 친한 친구들과 3일 정도 보낸다고 한다.
퇴근해서 아내에게 큰 아이는 어떤지 물어보니 행복해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나도 행복함을 느꼈다. 9개월 동안 군대에 있으며 얼마나 나오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아이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어 저녁 내내 행복했다. 서울에 3일 정도 있다가 4일 째 자정 무렵에 포항에 도착해 바로 그날 아침 다시 포항 친구들과 우리 차를 몰고 강릉을 간다고 한다. 일기예보 상으로 강릉에 눈이 내린다고 하니 아내의 걱정이 크다. 나는 그래도 큰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놓아 두라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이가 하는 일에는 가급적 간섭을 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아내에게 “인명은 재천이니 그냥 믿고 맡겨라.”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역시 모성은 부성보다 강하다. 주말이 겹쳐 보험도 들지 못하고 일기예보상 눈도 온다고 하니 아내가 걱정을 많이 한다. 큰 아이는 고민 끝에 친구들과 의논해 강릉의 숙소는 취소하고 전라도 여수로 숙소를 예약해 우리 차를 몰고 간다고 한다. 당일 취소로 환불은 비록 못 받지만 그래도 눈이 많이 온다고 해서 솔직히 나도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여수로 여행지를 바꾸었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아침이 되어 큰 아이는 출발 준비를 한다고 바쁘다. 본인이 차를 몰고 가는 것으로 친구들과 이야기가 되었는데 보험문제가 해결이 안되어 할 수 없이 버스로 일정을 바꾸게 되어버려 친구들에게 엄청 미안한 것 같다. 버스 일정도 꼬여 본인들이 짜놓은 여행일정이 흐트러지게 되어 속상한 것 같았다. 나는 “아빠가 태어줄까?”라고 하니 처음에는 “아니예요. 괜찮아요.”하고 큰 아이는 나를 걱정해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조금 뒤 친구들과 계속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큰 아이는 엄청 고민을 하다 나에게 “혹시 아빠 여수까지 태워줄 수 있어요?”하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는 것이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그래. 아빠는 좋지.”하고 화답을 했다. 큰 아이는 너무 좋아하며 신나게 친구들 픽업 일정을 잡는다. 나는 아이들이 불편해 할까봐 “그냥. 불편하겠지만 아빠가 없다 생각하고 너희들끼리 편안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친구들을 한 명씩 픽업해 전라도 여수로 출발했다. 비가 오는 날이고, 게다가 우리 차가 아닌 다른 차를 몰게 되어 평소 운전할 때 보다 긴장감이 두배 이상 이었다. 우리 차를 운전하지 못한 것은 주차되어 있는 차를 누가 운전 미숙으로 우리 차를 긁어 버려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렌트차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수로 향하는 도중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 보니 어른과 아이를 넘나들며 그들의 청춘을 쌓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생각을 하다 아차싶어 다시 정신을 운전에 집중하는 것을 반복하며 달렸다. 네비상으로는 3시간 40분이 걸리는데 잠깐 휴게소에 들러 거의 4시간만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솔직히 조금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여기서 나혼자 1박하고 아이들이 다음날 포항 출발할 때 전화하면 태우고 다시 포항으로 오는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혹시 그런 건 어떤지 타진해 보니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는데 눈치를 보니 조금 불편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입장을 바꾸어 보니 괜히 부모가 1박을 하며 대기까지 하는 건 더 미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갈 때는 그래도 가깝게 느껴졌는데 올 때는 왜이리 먼지 가도 가도 끝없는 길처럼 여겨졌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출발하며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따라 부르려 해도 내 차가 아니라 조작이 여의치 않아 그냥 라디오를 들으며 왔다. 포항에 도착하니 오후 6시 30분... 아침 10시에 출발해 하루가 꼬박 지난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피곤하지가 않았다. 그냥 가슴 한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잠시 생각해 보니 그냥 자식이 행복하니 부모가 행복한 것이었다.
어렸을 적 정한수 떠 놓고 부엌에서 늘 두손 빌던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엄마는 그 때도 오로지 자식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녀의 절대자에게 하염없이 빌었다. 지금도 전화하면 늘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엄마를 생각하며 나도 오늘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을 하느님께 간절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