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가 무리져 익어가는 곳을 알고 있다.찔레 새순을 먹던 산길과삘기가 지천에 깔린 들길과장마 진 뒤에, 아침 햇살처럼, 은피라미떼가 거슬러 오르던 물길을알고 있다. 그 길을 알고 있다.돌아가신 할머니가, 넘실넘실 춤추는 꽃상여 타고 가시던길, 뒷구리 가는 길, 할아버지 무덤가로 가는 길한철이 아저씨가 먼저 돌아간 부인을 지게에 싣고, 타박타박 아무도 모르게 밤길을 되짚어 걸어간 길웃말 지나 왜골 퉁정골 지나 당재 너머순한 바람 되어 헉헉대며 오르는 길, 그 길을 따라송송송송 하얀 들꽃 무리 한 움큼씩 자라는 길, 그 길을 따라수줍은 담배 꽃 발갛게 달아오르는 길우리 모두 돌아갈 길그 길이 참 아득하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그저께가 입춘이었다.봄이 문턱에서 머뭇거리다가 찬 기운의 커튼을 젖히고 옷자락을 끌며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다사로운 기운을 물씬 몰고 들어온다.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의 촉감도 이미 부드러운 온기로 가득하다. 봄은 이렇게 고향에서 부터 달려오는 것 같다. 어디선가 ‘고향의 봄’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제 회상해도 봄의 추억은 정겹기만 하다.삘기가 지천에 깔린 들길도 있고, 찔레 새 순이 올라오면 그 순을 따서 간식처럼 맛있게 먹기도 하고 머지않아 필 찔레꽃 향기에 미리 취하기도 하면서 그 길을 쉽게 지나가지 못한 옛 길. 산딸기가 무리져 있는 곳에서는 아예 그 곳에 머문 적이 많았나 보다. 산딸기 따 먹다가 ‘뱀 할배 지나가신다’고 누군가 고함을 치면 책보자기며 도시락 통 내팽개치고 ‘걸음아 나 살려라’고 죽을힘을 다해 뛰어 갔던 길. 장마 뒤의 아침 햇살은. 또 얼마나 밝고 환했을까 감나무 잎 윤기가 강물처럼 출렁이며 빛을 뿜어댔다. 산모롱이 돌아치는 강어귀로 은피라미 떼가 거슬러 오르던 그 신비한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 적도 많았다. 기억의 한 귀퉁이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 ‘고향 길’이다. 그 곳은 꽃상여도 지나갔고 뒷 구리 가는 길이기도 했으며 웃말 지나 왜골 퉁정골도 지나 당재 너머 지나가는 길이기도 했다.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주름진 할머니 투박한 손의 쓰다듬도 느낄 수가 없어지고 할아버지의 뒷짐 진 모습도 모두 묻어둔 곳이 된 고향 길. 그렇게 고향 길에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널려 있는데 어쩌면 그 길을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늘 미뤄 두기만 한다. 그렇지만 해마다 고향처럼 찾아 온 귀한 立春~.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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