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지난해의 빗물에 녹이 슨 꽃이 다시 녹슬기 시작한다면바라보다가 녹이 되어 떨어진 당신의 눈은향기가 소모된 나무껍질일 것이다다시 녹 슬은 꽃이 우수수 진다면문질러보다가 분질러진 당신의 손은참혹한 덩어리일 것이다빗줄기들이 유리에 부딪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면당신은 귓속에 병마개를 틀어막고 들어야 할 것이다비가 내리는 동안 당신의 시간이 멈춘다면시간은 죽어 숨소리를 그칠 것이다.다섯한없이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이 되는당신의 두 팔을 받으며 편안히 눕는다. 당신의 마음은 나의 옷, 포근한 온기를/ 온몸에 감고 잠이 든다. 당신의 애정은 푸른 밥, 나의 소화기관은 하루 종일 꽃망울을 벌여 일 초 일초(一秒一秒) 꽃피워낸다. 태양이 한 아이의 손바닥에 가지런히 씨앗을 올려놓고 웃음 짓듯이 당신의 눈길이 내 눈을 묶을 때 / 나는 순한 물이 된다. 속삭이고 싶다. / 지나가는 바람에게 마음을 주고 싶다.형태 없는 가을에,/ 내 손에 와 닿는 것들은 / 순한 물이 되어 고인다. 나의 틀은 좁은 마당에서도 알맞다.당신의 눈이 내 눈에 고이고,/ 나는 잘 길들여진 어린 나무,친근한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 쓸고 싶다. 오래오래 헤매고 싶다. / 형태 없는 가을에 사면이 하얗게 칠해진 마당에서 나는 순한 물이 되어 고인다. 당신의 살 위에 내 살을 댄 채.~중략(여섯과 일곱은 지면 관계 상 생략하기로 한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비의 부드럽고 포근한 온기로 씨앗을 싹 틔우고, 꽃피워내는 일처럼 비를 맞이하는 일은 시인을 ‘잘 길들여진 어린 나무’가 되게 한다. ‘순한 물이’ 되게 한다’ 비가 그리워지는 날들이다. 메말라가는 세상에 촉촉한 한줄기 단비가 내렸으면…그런 사람들로 가득찼으면…<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