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야고보 성인은 병든 환자에게 하루라도 빨리 약(복음)을 전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때 복음을 대하는 중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각자의 카르마에 따라 환희하게 받아 지닌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사탄의 유혹으로 여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야고보 성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원망하는 마음이었을까. 애처로운 마음이었을까. 실망과 좌절감에 휩싸였을까. 아니면 그저 이런 저런 중생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起心)의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까.’ 아마 12연기(十二緣起)의 작용을 완벽히 통찰한 연각세계(緣覺世界)의 성자답게 최고의 마음경지인 ‘머무는 바 없이 일으키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을 것이다. 나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 마음. 그래도 애써 흉내라도 내어 보고 싶어지는 그 마음.사아군으로 가는 길은 ‘천진난만’이라는 꽃말을 가진 노란 후리지아 향기가 함께 해 주었다. 달콤한 꽃향기가 심신의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든다. 까미노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노란 꽃 세 종류가 있다. 유채꽃, 아카시아, 그리고 후리지아다.어디쯤에서였을까. 누군가 차량통행이 없는 아스팔트 폐도(廢道) 위에 작은 돌을 주워 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하트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최소한 이 길을 걷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사랑하며 걸으라고 하트는 말하는 듯 했다.‘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 하였으니 객관과 주관, 주관과 주관의 차이쯤이야 무슨 문제가 될까. 어쩌면 사랑만이 인간의 에고(ego)를 극복하고 주관과 객관의 거리, 주관과 주관의 거리를 단박에 뛰어넘게 하여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해 줄지도 모른다. 인간의 구원과 해탈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에고도 사랑 앞에서는 ‘끓는 물에 얼음’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에고의 타파 없이 구원과 해탈은 불가능하지만 에고를 가진 상태에서도 사랑은 가능하다. 에고는 사랑 속에서 얼음처럼 녹는다. 사랑과 자비만이 마침내 인간을 구원과 해탈에 이르게 한다.각각의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천상세계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인간세계에 머물러 있다. 대문 안은 천상세계, 대문 밖은 인간세계인 셈이다.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위선이지만 천상세계를 지배하는 정신은 사랑이다. 그러나 각각의 가정(천상세계)이 ‘창이 없는 모나드’로만 떠돈다면 이 인간세계는 영원히 수라세계와 천상세계의 중간을 오가는 ‘잔인한 평화지대’로 머물고 말 것이다. 부분은 선인데 그 부분의 합이 악이라는 이 모순의 원인은 또 다시 에고다. 각각의 가정에만 머물러 있는 사랑이 빅뱅을 일으키지 않는 한 가식과 거짓, 위선이 지배하는 인간세계의 표리부동은 여전할 것이다.한 명의 아군을 구출하기 위해 8명의 병사가 목숨을 걸고 구출작전을 펼치(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것은 사랑이 인류에 대한 희망의 근거라는 믿음을 준다.‘한 사람의 광부를 구하기 위해 그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것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우리는 사랑이 인간을 천상세계로 이끄는 최고의 견인력이라는 확신을 얻는다.예수 그리스도가 ‘네 식구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 것은 에고를 벗어나고, 자신의 가정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세상이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1910년 겨울 러시아 모스크바 남부의 간이역 아스타포보.대문호 레흐 톨스토이는 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기 전 또렷한 음성으로 말한다. ‘얘야, 네가 돌보아야 할 사람은 톨스토이 외에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거라.’톨스토이도 그리스도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농부의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죽는 순간만이라도 가난한 농부처럼 죽고자 했던 톨스토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모든 인류가 자신의 가족처럼 타인을 사랑한다면 이 세계가 곧 천상세계다. 예수가 ‘사랑’을 설파한 것은 이 세상을 천상세계로 만들라는 지상명령이었다. 적어도 이 까미노 800킬로미터는 천상세계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2천 년 전 이 길을 걸어간 야고보 사도의 정신에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늙은 폐도(廢道) 위에 돌로 하트를 만들어 놓고 떠난 그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직도 가식과 위선과 거짓이 지배하는 인간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사랑으로 에고를 녹이고 마침내 구원을 얻어 천상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을까.그날 하트의 흐트러진 돌멩이 몇 개를 반듯이 놓아주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오래 오래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 뒤에 오는 누군가가 꼭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지흔 씨나, 정화 씨나, 신부님이면 더 좋겠다. 아, 이 마저도 에고의 발로(發露)일까.저만치 신라 고분 같은 둔덕에 토끼굴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보인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보관하는 저장고다. 와인은 빛이 들지 않으면서 일정한 온도와 약간의 습기가 있는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다른 냄새가 스며들지 않아야 하고 진동이 없어야 한단다. 괜히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나중 어떤 나라의 한 와인 애호가여, 만약 그대가 마시는 와인의 향과 맛이 살짝 부족하거든 오늘 절뚝거리는 내 걸음의 진동 탓이었음을 이해해 주기를….또르띠야가 없었다면 나의 까미노는 끔찍했을 것이다. 저렴하고, 맛있고, 흔하고, 질리지 않는 또르띠야는 ‘주문빨’이 나빠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거나, 건너뛰었을 때 정말 요긴한 ‘일용할 양식’이자 ‘전투식량’이 되어주었다. 이날도 두어군데 바에 들러 또르띠야와 오렌지 주스와 콜라로 요기를 했다. 주문자 눈앞에서 노란 오렌지를 껍질째 갈아 만들어주는 신선한 오렌지 주스가 어느 지점부턴가 잘 보이지 않아서 콜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또르띠야는 웬만한 바에서도 취식이 가능했다. 물론 종종 그 흔한 또르띠야도 팔지 않는 ‘이상한’ 바 때문에 낙심한 적도 있긴 했다.어제, 꼭 이틀 치를 하루 만에 걸었던 이유만은 아니게 길맛이 통 나지 않았던 이날 그래도 꾸역꾸역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또르띠야의 힘이었다고 해야겠다.저 멀리 사아군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앞에 보이는 사아군을 두고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는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다. 까미노에서 노란 화살표는 절대자다. 돌아가라고 할 때는 그럴 이유가 있다. 화살표를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12세기에 지었다는 고풍스런 푸엔테 성모성당(다리의 성모성당)이 넓은 터에 아담하게 들어서 있다. 성당은 사아군의 여느 유적 건물들처럼 무데하르 양식으로 지어졌다. 무데하르 양식은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발달한 이슬람 풍의 스페인 건축양식이다. 돌 대신 벽돌을 주로 사용한다. 사아군에는 스페인 특유의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8세기 스페인은 무슬림들에 의해 국토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 뒤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실지(失地)회복운동(레콩키스타)이 일어나 15세기 들어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로마네스트와 고딕양식이 이슬람 풍과 섞여 여타 유럽국가들과는 다른 스페인 고유의 기독교 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이 탄생되었다.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 건물이 바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의 자매 궁전으로 꼽히는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전이다.성당은 아치형 돌다리 너머 넓은 터 위에 외롭게 서 있었다. 이 돌다리 때문에 다리의 성모성당이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질박한 돌다리와 꾸밈없이 수수한 성당이 조화롭다. 아치형 돌다리 아래로는 발레라두에 강이 수줍게 흐르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