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기간에 경남 밀양시에 있는 영남알프스 9봉 중에 길도 평탄하고 정상에 서면 경치가 너무 멋진 운문산을 올랐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영남알프스는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의 접경지에 형성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 수려한 산세와 풍광을 자랑하며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 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의 7개산을 지칭하나, 운문산(1,188m), 문복산( 1,013m)을 포함시켜 소위 9봉이라 말한다. 필자가 운문산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영남알프스 9봉 중에 한 번밖에 오르지 않은 고헌산을 제외하고 다른 산은 이미 여러 번 올랐다. 운문산은 밀양 석골사에서 출발해서 치마바위, 정구지바위, 상운암, 운문산 정상, 딱발재, 범봉, 석골사로 원점회귀하는 5시간 정도의 코스를 두 차례 걸었다. 설 전날인 지난 주 토요일, 산벗 세 사람은 늘 만나던 곳에서 오전 9시에 만나 점심으로 먹을 꼬마김밥을 준비한 후 9시 20분에 포항을 벗어나 석골사로 2시간 가까이 차를 몰았다. 구름 위의 암자라는 상운암의 아름다움과 운문산 정상의 풍광을 즐기며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석골사 입구에 도착한 일행은 산을 오르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카페나 편의점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산을 오르기 전에 차 한 잔을 나누고 오르는 것은 산벗들의 오랜 관행이다. 그래서 지나쳐온 산내면 얼음골 마을로 갔다가 오기로 했다. 석골사 초입에서 나와 얼음골 편의점에 들러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고 한 잔은 보온병에 담아서 나오는데 등산객이 눈에 많이 보였다. 편의점 사장에게 이곳에서 오를 수 있는 운문산행 코스를 물었더니, 상양마을회관 주차장에서 가는 길이 최단코스라고 답했다. 선배이자 산행대장은 석골사로 가지말고 오늘은 가보지 않았던 이곳 산내면 삼양리에서 운문산을 오르자고 했다. 편의점을 나와 상양마을회관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할 곳이 없어서 한참 언덕을 올라가 주택 근처 공터에 주인의 승낙을 받아 어렵게 주차를 했다. 등산화를 고쳐 신고 배낭을 둘러메고 걸어서 내려와 상양마을회관 주차장에서 마주보이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사과과수원 사이로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군데군데 가지산, 운문산, 아랫재, 백운산을 안내하는 등산로 안내 팻말이 붙어 있다. 포장도로가 끝날 무렵 정원이 넓고 잔디가 가지런히 정리된 멋진 황토 집이 보였다. 정자도 있고 집을 이쁘게 꾸며 놓았다. 멋진 이집 위쪽이 바로 등산로 입구였다. 상양회관 마을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산 들머리까지는 1.1Km의 거리다. 언덕길 사이로 과수원과 주택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보니 11시 40분이었다. 겨울인데도 날씨는 화창하고 따스하다. 과수원 울타리 목련나무에는 연푸른 망울이 맺혀있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안내팻말을 보니 아랫재까지 가는데 1.8Km, 운문산까지는 3.3Km다. 아랫재로 가는 길은 완만하고 편안했다. 다른 산처럼 계단도 없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서 걷기가 수월했다. 잡목숲 사이로 가랑잎을 밟으며 편하게 걷다보니 마음도 편안해졌다. 계속 가다가 조금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순식간에 아랫재에 다다랐다. 아랫재에 설치된 운문산 생태·경관보전지역 환경감시초소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쉬면서 물 한 잔을 마신다.
대구지방환경청과 청도군이 설치한 안내판을 보니, 이 지역에는 까막딱다구리, 삵, 하늘다람쥐, 담비, 벌매, 올빼미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설명해 놓았다.상양마을회관에서 2.9Km를 올라온 아랫재에서는 가지산과 운문산, 억산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일행은 운문산, 억산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동안은 편안하게 왔지만 지금부터 운문산 정상까지는 가파른 길을 걸어야 한다. 경사도가 있는 구간을 계속 걸으니 땀도 송골송골 맺힌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현재형이다. 삶이 현재형인 것처럼 걷는 일은 지금이다. 오르기 힘든 산도 조금만 견디다보면 금방 괜찮아진다. 산을 오르는 것이 한계가 없듯이 세상이 정한 한계도 없다. 한계라고 믿는 자기 자신과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 살아있음을 직접 느끼고 심장에서 뛰는 박동소리를 느끼며 두 발로 걷는 일이야 말로 지금 이 순간이다. 주변 산들을 둘러보며 긴 한숨을 쉬고 산 아래를 보니, 산과 산으로 연결된 능선들이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아름답다. 1일 2산 또는 1일 3산이 아니어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내면서 산행을 하니 마음도 여유롭다.
한 발 한 발 걷다보니 벌써 몇 개의 산등성이를 지나쳤고 한자로 운문산이라 쓰인 네모난 작은 표지석이 나타났다. 각자 인증샷과 단체 사진을 찍고 조금 더 오르니 화강암으로 높게 세워놓은 운문산(해발 1,188M) 정상석이 우뚝 서있다. 인증샷을 남기고 정상에 서서 산 아래의 세상을 내려다 본다. 정상주변 전망 좋은 위치를 찾아 억새밭에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산아래를 바라보며 준비해간 삶은 고구마, 곶감, 귤, 사과를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즐긴다. 깜박하고 김밥을 차에 두고 와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아무도 불만이 없다. 골골이 흘러내린 산계곡을 바라보며 지난 여름날 보았던 운문산의 초록빛 그늘을 떠올렸다. 울창했던 초록의 자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하늘을 향해 두팔을 뻗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본다. 낙엽이 진다고 나무가 죽지않듯, 개개인의 삶도 지금 추락한다고 영원히 죽지는 않는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나무의 변신이 나를 맞이할까. 문득 또다시 변신해 있을 나무의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갈 때 느끼지 못했던 비탈길이 가파르다. 스틱에 힘을 주고 조심조심 내려오다보니 아랫재다. 아랫재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부지런히 내려오니 삼양마을회관이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다. 주차한 곳으로 다시 걸어가 옷을 대충 털고 차에 오른다.
과수원과 주택사이로 내려오다 상양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하얀 2층 건물 카페 산내랑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며, 산행소감을 나누면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아늑한 카페 앞에는 수백년이 됨직한 고목나무가 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카페 창을 통해 바라본 운문산이 푸른물감빛 하늘을 배경으로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카페를 나와 운문산을 뒤로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울주군 덕현삼거리를 지나 석남사 근처의 유명한 맛집 촌동네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영업을 하고 있어서 주인이 추천하는 시래기영양밥을 시켜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시래기영양밥과 각종 나물반찬은 일행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땀을 흘리고 나서 배가 고파 그런 탓도 있었겠지만 맛은 단연 압권이었다. 주인의 친절에 감사를 표하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귀가길에 올랐다. 시간을 줄이려고 경주시 산내면으로 달려오다가 건천읍에 있는 건강나라 사우나에 들렀다. 피로했던 심신을 온천에 내려놓고 포항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오늘도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내일도 최고의 날이 되기를 바라며 산벗들은 작별을 고했다.
아직 본문을 읽지는 못했지만 설 연휴에 보려고 구입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다섯번째 산` 뒷표지의 글을 읽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산에 오르면 우리의 영광과 우리의 슬픔도 대단치 않아진단다. 우리가 얻은 것이나 잃은 것이 무엇이든 그저 저 아래에 남아 있지. 산 정상에 서면 세상이 얼마나 광활하고 지평선이 얼마나 멀리 뻗어있는지 알 수 있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