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밀고자를 안아주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서른아홉 살 젊은 성자의 넓은 금도(襟度)가 경외스럽다. 그의 생애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일직선으로 뻗은 이 길처럼 올곧은 직선의 삶이었건만 그의 성품은 이리도 유연했던 것이다. 한 때 불같은 그의 성정(性情) 때문에 그리스도로부터 ‘천둥의 아들’로 불렸다고 하나 가까운 밀고자를 용서한 그에게 ‘연각(緣覺)의 성자’라는 헌사가 아깝지 않다.스스로 평탄한 길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고난의 길을 걸었던 야고보, 곧은 신념과 유연한 성품을 동시에 지녔던 야고보. 그 야고보 성인이 스승의 명을 받들어 땅 끝까지 선교하기 위해 홀로 걸었던 그 험난한 길을 따라 2천년이 지난 어느 날 늙은 중 하나가 간다. 지평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원망해가면서. 까리온에서 칼사디야로 가는 17킬로미터 사이에는 단 하나의 마을도, 바도 없다. 오직 발밑의 땅, 머리 위의 태양만 있을 뿐이다. 또 하나가 있다면 고독과 침묵.이날의 까미노는 최악이자 최고였고, 지옥이자 쳔국이었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 뜨거운 태양, 절뚝이는 걸음은 내가 지금 최악의 지옥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 지옥을 걷고 있다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는 처칠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리였다. 오직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만이 나를 구원해 줄 뿐 그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되어 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삶이 지옥도(地獄圖)를 그리고 있다면 거기서 한 발을 더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이런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현애살수(懸崖撒手)’의 기백이 해탈과 구원을 담보해 준다.반면 몸살로 앓아 누운 길벗에게 약을 전해 주기 위해, 내가 받은 친절을 되돌려 주기 위해 한 발이라도 더 빨리 가고자 하는 내 마음은 지금 천국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하루라도 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픈 마음 하나로 이 길을 걸었을 야고보 사도의 마음도 이랬을까. 나는 천국으로 가는 지옥길을 걷는 기분으로 걸었다.8시가 넘었어도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러나 다행히 길 위로 낮게 펼쳐진 구름 속으로 태양이 모습을 감춘다. 이것만해도 살 것 같다. 5킬로미터쯤 남은 지점에서 잠시 길가에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았다. 그늘도,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아무렇게나 쉬었다 다시 가다보면 불과 5분도 안 돼서 꼭 그럴듯한 쉴 자리가 나타나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황량한 메세타에서는 그럴 일도 없을 것 같다.게다가 오늘은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도 아니다. 남은 거리를 확인하려고 휴대전화기를 꺼내 보니 두 친구 팀의 지흔 씨의 부재 중 전화가 찍혀 있다. 전화를 걸어보니 마을이 푹 꺼진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멀리서 보면 마을이 안 보여 맥 빠질 수 있다며 실망하지 말고 잘 오란다. 환자도 곁에서 뭐라고 한 두 마디 거든다.9시 30분쯤 사위가 저녁 어스름에 잠길 무렵 저 멀리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하늘과 맞닿은 길이 아래로 굽어 내려가는 지점이 보인다. 다가갈수록 길 너머의 낮은 숲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저기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과 저 너머의 숲 사이에 마을은 들어앉아 있을 터이다. 다가서는 거리만큼 서서히 분지 속에 들어선 마을의 형체가 나타난다. 여러 건물들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베일을 벗듯 마침내 마을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다시 길가에 함부로 주저앉았다.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조금 남은 물을 머리에 들이 부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깨끗이 닦았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모습을 보면 환자는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앉은 채 바짓가랑이도 털고 배낭도 털었다. 다시 배낭을 들쳐 메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저 아래 마을 주민들로 추정되는 대여섯 사람이 함께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물집 탓에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절뚝이며 내려가는데 한 사람이 쭈뼛주뼛 하면서 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길가에 앉았다 일어서는 사이에 어둠으로 변해가는 어스름 탓에 누군지 알아보기는 어려워도 나를 향해 오는 것으로 보아 두 친구 팀의 길벗으로 짐작됐다. 나는 양손에 쥔 폴대에 힘을 가하며 불완전한 걸음을 보정했다.다가가서 보니 지흔 씨였다. 팜플로나에서 헤어진 후 근 2주 만에 만나니 반갑다. 까미노 출발지인 프랑스 생장의 알베르게 2층 계단을 내려오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단발머리에 꼿꼿한 자세로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본 나는 단박에 파리에 사는 한국교민이라고 단정했다. 계단 끝에 있는 1층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는 한국 늙은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 영락없는 파리지엔이었다. 호텔 같은 일반적인 숙박업소가 아닌 까미노 첫 번째 알베르게라 그런지 호텔 리셉션과는 다른 질문들이 연이어 들어와서 살짝 ‘동공지진’이 일어나던 참이었다. 이때 나타나는 한국인은 당연히 수호천사다. 그러나 문제는 수호천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도도해 보여서 도와 달라는 도자도 꺼내지 못할 분위기라는 것. 만약 체크인을 도와 달라고 하면 한국인 망신시키는 늙은이로 여기고 눈길도 주지 않고 불어로 ‘Je suis désolé(미안합니다)’하고는 쌩하고 지나가 버릴 것 같았다.나는 아직도 어떻게 해서 첫 대화가 시작되어 길벗이 되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지흔 씨 모습과 지금의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모습 사이가 너무 멀어 생경하고 의아하다.어색함을 누르고 뭐하러 마중까지 나왔냐고 하니 ‘런닝 머신 달리는 것 같은 길이라 더욱 힘든 길인데 고생했다.’고 인사하는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환자는 좀 어떠냐고 물으니 지금 잠이 들었단다. 건네주는 생수병을 받아 물을 마시며 지흔 씨의 도움을 받아 체크인을 마쳤다.2층으로 올라갔다. 다닥다닥 2층 침대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다.지흔 씨에게 약을 건네준 후 잠든 환자의 이마를 짚어 보니 미열이 느껴진다. 적당히 짐을 풀고 샤워실로 갔다. 샤워부스가 아니라 숫제 세워진 관(棺)이다. 팔을 움직이기도, 허리를 굽히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좁다. 부득불 문을 살짝 열어 약간의 공간을 더 확보하고 급히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나왔다. 전신 무력과 함께 급격한 허기가 몰려왔다. 리셉션에 가보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1층 리셉션으로 내려가는데 마침 1층 계단 우측에서 젊은 부부가 문을 열고 나온다. 내부를 얼핏 보니 작은 상점 같다. 급히 그들에게 배가 몹시 고프니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니 영업종료 됐다며 두 말 않고 문을 잠그고 가버린다. 혹시나 하고 리셉션으로 가본다. 아무도 없다. 오늘 이 알베르게가 별로 나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살짝 당혹스럽다. 하릴없이 작은 풀장이 있는 정원을 가로질러 세탁실로 가 수돗물을 틀어 물을 흡입했다.물배를 채운 후 휴대전화기에 오늘 일을 메모하다보니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온다. 밤이 되면서 기온이 급강하한 탓이었다. 차가운 바람마저 분다. 세탁실 문을 닫아 바람은 피해도 낮은 기온은 피할 길이 없다. 유럽은 아무리 더운 날도 밤이 되면 선선하거나 춥다. 그리스와 오스트리아 등을 쏘다니던 7월 중순 무렵까지 무거운 침낭을 버리지 못한 이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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