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에 소재한 고위봉(494m)은 금오봉(468m)과 함께 남산에 속하는 대표적인 봉우리다. 금오봉과 고위봉이 중심이 되어 이룬 산줄기 전체를 남산이라 한다.남산은 남북으로 약 8km에 걸쳐있는 산으로 남쪽의 금오봉(468m), 서쪽의 고위봉(494m)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산은 신라천년 고도의 진산이다.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에는 100여 곳의 절터와 80여 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어서 산속의 박물관으로 인정돼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필자가 사는 포항과는 30여 분 거리에 있어 틈이 나면 금오봉과 고위봉은 찾는다. 금오봉은 한동안 보름만 되면 밤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통일전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달빛을 받으며, 왕릉을 지나 솔밭사이로 걷다보면 순식간에 금오정에 이른다. 금오정에 도착해 정자 앞뜰 너럭바위에 퍼질고 앉아 보름달을 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근심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음이 환해진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멍 때리고 앉아 보름달을 바라보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특히 칼날 같은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바라보는 한겨울의 보름달은 나태한 삶을 희망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생활의 활력소 그 자체였다. 구석구석을 훤하게 알고 있는 남산을 밤과 낮 할 것 없이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행복은 인근에 남산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경주 남산은 용장리, 삼릉, 상서장, 포석정, 통일전, 비파마을 등 출발지는 달라도 결국 금오봉과 고위봉에서 만나게 된다.지난 주말은 겨울비가 조금씩 내리면서 안개가 많이 끼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산벗 일행은 9시에 대이동 A아파트 광장에서 만나 통일전 쪽으로 차를 몰았다. 남산사(구, 염불사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최근에 단골카페가 된 늘人에 가서 모닝커피를 나눈 후 대안당, 칠불암, 신선암, 백운재, 고위봉, 열반재, 녹원정사에서 점심을 먹고 원점회귀 코스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이번 코스의 원점회귀는 벌써 세 번째다. 남산 산길이 나름대로 모두 좋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산행길이어서 오늘 산행코스는 여러 번 찾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산벗 일행은 카페 늘人에 도착해 커피 넉 잔을 주문하고, 한 잔은 보온병에 담아서 점심식사 후 마시기로 했는데 늘 챙겨오던 후배가 불참해서 보온병이 없었다. 그러자 마음씨 착한 늘人의 총각사장은 보온병을 빌려주겠다면서 하산할 때 돌려달라고 했다. 제과기술과 바리스타 자격을 갖춘 미남총각이 혼자서 운영하고 있는 늘人은 주택을 개조해서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오게 남향 벽에 통창을 냈다. 남산을 바라보면서 즐기는 커피는 주인의 친절함이 더해져 맛이 최고였다. 카페 안에 들어서면 10여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지만 우측 벽 쪽의 커튼을 열면 10명 이상이 들어가 얘기를 나눌 공간이 있어서 생각보다 넓다.늘人의 뜰에는 잔디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고, 나무껍질을 잘라 담장을 나란히 세웠다. 오래된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붉은 홍시를 쪼고 있는 이런 풍경을 보면 잠시 쉬는 시간이 정말 따뜻하고 편안하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 뜰에서 카페 늘人을 배경으로 일행들은 사진을 찍는다.남산사(전, 염불사지)주차장에서 등산화를 고쳐 매고 배낭과 스틱을 챙긴 후 흐린 날씨의 염불사지동·서삼층석탑을 배경으로 또 일행들은 사진을 한 컷씩 남기고 출발한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형태이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남산사 입구 맞은편 담장을 보니 "삶은 지나간 과거에 있지 않고 다가올 미래에 있지도 않다.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바로 그것을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씌여있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오늘도 비를 맞으며 남산을 찾은 것이다.시계를 보니 11시다. 고위봉을 오르는 들머리에는 이정표가 있고 곳곳에는 등산지도가 잘 만들어져 있다. 칠불암을 오르는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완만해서 나있어서 등산객들이 산책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천천히 걸으며 사색하는 데는 이보다 좋은 길은 없을 것 같다.    울창한 솔숲으로 이어지는 칠불암 오름길은 돌계단으로 계속 이어지고, 한참을 올라가면 칠불암에 딸린 암자 대안당(大安堂)이 나온다. 칠불암을 찾는 불자들이나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약수터가 있어 목을 축일 수도 있다. 잠시 쉬면서 사진도 찍고 간식으로 가져온 바나나를 하나씩 나눠 먹었다.대안당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면 칠불암이다. 칠불암 뜰 삼층석탑 앞에 비스듬히 서있는 소나무를 보니 칠불암에 얽힌 세월을 보는 것 같다. 산위로 올라가는 운무를 배경으로 서쪽 암벽 앞에 새겨진 일곱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작은 암자의 건물이 오늘따라 왠지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곳 칠불암은 다른 암자와는 달리 법당에 부처님을 비롯한 어떤 불상도 모시지 않는다. 이는 이곳에 있는 마애불상군을 주불로 모시기 때문이고, 칠불암 법당에서 동쪽 창을 바라보면 마애불상군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남산 유일의 국보 제312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서쪽 암벽 앞에 삼존불이 동쪽을 향해 새겨져 있고, 그 앞 바위에는 사면불이 조각되어 있었다.칠불암의 불상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7세기 말엽에서 통일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칠불암을 배경으로 한 컷을 찍고, 대숲을 지나니 급경사 구간의 계단과 암릉이 시작된다. 가파른 암릉구간을 오르니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너럭바위에 올라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속을 벗어나 신선이 사는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조망터를 지나고 다시 가파른 계단이 계속되고, 60여 미터 내려가면 신선암이 있지만 몇 번 가본 곳이라 일행은 그대로 지나친다. 신선암에는 보물 제199호로 지정된 마애보살 반가상이 새겨져 있다. 마애보살 반가상은 절벽 끝자락 바위에 마치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듯한 표정이고, 입가에는 한없이 근엄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가파른 데크계단을 올라서니 넓은 쉼터가 나온다, 맑은 날이면 멀리 토함산 능선도 보이고, 눈앞에 펼쳐지는 경주 시가지와 남산사가 발아래 보이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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