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로 돌아와 환자와 ‘톡’으로 상황을 알아보니 신부님의 전언대로였다. 진통제를 먹어도 별 차도가 없어 하루 더 묵으면서 내일 신부님이 도착하면 몸살약을 얻어 복용하기로 했단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를 살짝 지나고 있다. 잠시 후 빈 물병 가득 물을 채우고 대충 풀어놓은 배낭을 다시 꾸렸다. 옆 침대를 돌아보니 권 선생님이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잠들어 있다.출입문 쪽 가희 씨에게로 갔다. 권 선생님이 깨면 아픈 길벗에게 줄 약을 가지고 먼저 출발했다고 전해 달라고 하자 자신에게도 약이 좀 있다며 세 종류의 약을 두 알씩 챙겨준다. 내게 충분한 약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주는 대로 다 받아 넣었다. 체크아웃을 하지 않을테니 뒤쳐져 오고 있는 길벗에게 내 침대를 주면 된다고 조언해 주자 반색하며 고마워한다.맵 어플을 보니 칼사디야 데 라 쿠에자까지 17킬로미터, 예상 소요시간 3시간 30분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5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지금이 4시 40분이니 10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다. 프랑스도 그랬듯이 스페인도 10시 가까이 돼야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별 문제는 없다.나와 합류하는 날을 기다린다던 길벗들도 힘든 구간이라며 만류하고 나섰다. 그러나 오후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느니 일정도 단축할 겸 지금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까리온이 아니라 칼사디야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숙소 도착 후 샤워하고, 저녁 먹고 잠시 쉬는 동안 노독이 다 풀렸는지 몸이 의외로 가벼웠다. 사실 설익은 빠에야 몇 술만으로 저녁을 때운 게 걸리고, 엄지발가락과 연결된 종자골의 통증도 부담스러웠다. 절뚝걸음 탓에 왼쪽 발목에 든 검붉은 멍도 그랬다. 하지만 어차피 걸어야 할 내 몫의 길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지금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앞에서 온몸을 달굴 태양도 이미 많이 기울어진 터라 큰 장애는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물론 이 판단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각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을 빠져나가는 다리를 건너도 한동안은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었다. 듬성듬성 나무가 있어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삭막하기로 정평 난 메세타(고원) 구간임을 감안하면 다행이다. 문제는 정면에서 뜨거운 열기를 쏘아대는 태양이었다. 저 까마득한 지평선을 넘어 갈 때까지 태양과의 독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둘 사이에 태양광선을 가려주는 어떤 인공물도, 자연물도 없다. 오직 태양 앞에 홀로 선 고독한 단독자로 이 길을 가야 한다. 오후 5시가 넘었어도 스페인의 태양은 ‘지는 해’가 아니었다. 스페인이 10시쯤에야 비로소 어두워지기 시작한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오후 5시의 스페인 태양은 오후 2,3시 경의 한국 태양에 해당되는 셈이었다. 단순히 ‘지는 해’라고 여겼던 건 큰 실수였다.출발 후 1시간 쯤 갔을 때 남의 집 대문 진입로의 작은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더위에 엿가락처럼 녹아내린 초콜릿 바 두어 개를 먹고 신부님에게 ‘톡’을 보냈다.‘약을 기다린다는 환자의 소식을 듣고 먼저 출발했다.’며 ‘두 친구 팀은 내일 하루 더 쉬었다 간다하니 내일 신부님이 도착하시면 잘 챙겨 봐 달라.’고 하자 환자 걱정보다 내 걱정을 더 해준다.출발 후 2시간 쯤 지나자 길이 팔을 걷어부치고 본격적인 싸움을 걸어온다.온몸으로 햇빛을 밀어 헤치면서 걷는 길은 두 배 이상의 체력소모를 불러온다. 홀로 걷는 길이라면 여기서 또 두 배 이상의 체력소모와 스트레스가 추가된다.그러나 태양과의 독대, 단독자의 고독도 지평선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걸어야 하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 보다 직선으로 뻗은 길은 훨씬 가깝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는 길 보다 고도변화가 전혀 없는 길은 체력부담도 훨씬 덜하다. 그저 두 발만 번갈아 내 디디면 거리는 줄어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다. 똑 같은 풍경 속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은 아무리 가도 가고 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부지런히 걷고 있으니 거리는 분명 줄어 들고 있겠지만 육안으로 확인이 잘 되지 않으니 심리적 부담이 작지 않다. 차라리 시간이 조금 더 들더라도 구비 돌아가는 길을 걷는 편이 심리적으로는 훨씬 낫다. 모르긴 해도 체력적으로도 그게 더 나을 것이다. 마음이 지치면 몸도 함께 지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므로.인생의 길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은 우리의 근골을 수고롭게 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은 우리의 마음을 고단하게 하지만 그런 인생이 평탄한 인생보다 더 나은 지도 모른다.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평탄한 인생은 오히려 그를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람으로서 짓는 가장 큰 죄라고 하는 ‘인생을 낭비한 죄’를 범할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도 높다. 누구나 원하는 평탄한 길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 일지도 모른다.
야고보 사도의 생애를 생각해 본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북쪽이자 나사렛의 동북쪽에 있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동생 사도 요한과 함께 어부인 아버지를 도우며 유복하게 자랐다. 예루살렘에 별장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하니 꽤 부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야보고는 어느 날 운명처럼 예수를 만나 배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물고기를 잡는 대신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전도자(傳導者)의 삶을 살게 된다. 유복한 가정의 맏아들로 아름다운 호수에서 물고기나 잡으며 사는 평탄한 길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은 평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마리아와 유대지역에서 복음활동을 하던 야고보는 ‘땅 끝까지 가서 선교하라.’는 예수의 명을 받고 이베리아 반도로 간다. 그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까미노를 걸어 스페인 북서쪽 작은 마을인 묵시아까지 가서 선교에 진력한다. 어느 날 홀연히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간 그는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그리스도인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다른 사도들과 함께 끝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선교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는 밀고에 의해 피체되어 구금된다. 야고보의 삶은 평탄하지도 곧게 뻗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만약 구금된 후에라도 뜻을 굽혔더라면 그의 생애가 어떠했을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