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화급할 때 그 부처님 찾아가면 그저 놓으라고만 하시더니천태산 영국사 부처님도 하냥 같은 말씀이시라본전도 못한 어설픈 장사꾼처럼터덕터덕 내려오다 마주한천년 은행나무,멀거니 한참을 올려다보고 섰는 나에게눈주름살 같은 가지 가만가만 흔들어 하시는 말씀,견뎌라,사랑도 견디고 이별도 견디고 외로움도 견디고오금에 바람 드는 참혹한 계절도 견뎌라밑 드러난 쌀통처럼 무거운 간난도 견뎌라죽어도 용서 못할 어금니 서린 배신과구멍 뚫린 양말처럼 허전한 불신도 견디고구린내 피우고도 우뭉 떨었던생각할수록 화끈거리는 양심도 견뎌라어깨너머로 글 깨우친 종놈의뜨거운 가슴 같은 분노도 꾹 누르고싸리나무 같은 가슴에 서럽게 묻혔던가을 배꽃처럼 피어나는 꿈도 견뎌라들판의 농부가 작은 등판으로 온 뙤약볕을 견디듯가느다란 외등이 눈보라 치는 겨울밤을 견디듯너의 평생이 나의 천년 아니겠느냐<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이 시에서 나오는 영국사 천태산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223호다.‘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절에 들어 온 고려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함께 천일기도를 하고 나니 홍건적의 난이 평정되고 ‘나라가 평안해져서, 기도 도량이 뛰어난 절이라 하여 영국사(寧國寺)로 명명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천년 세월이 지나 현재도 은행을 세 가마니 이상 수확할 수 있고 가지 한 가닥이 늘어져 땅에 닿으면 거기서 다시 순이 돋을 만큼 생명력이 강한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천년 세월을 생명력 하나로 버텨온 은행나무에게 시인은 “견뎌라”라는 한 마디를 듣는다. 견뎌야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면 모두 견디기 어려운 것들 뿐이다. ‘참혹한 계절도, 무거운 간난도, 죽어도 용서 못할 배신도, 허전한 불신도, 분노도, 사랑도, 이별도’ 견디고 심지어는 ‘화끈거리는 양심’마저도 견딜 수 있으면 견디라고 한다. 그런 모든 것을 견뎌 왔기에 질긴 생명력을 지킬 수 있었다는 은행나무! 천년을 버텨온 힘의 근간이 견딤에 있었음을 새삼 깨우친다. 귀중한 증인이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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