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말이 무기다. 적절한 비유와 풍자는 정적을 압박하고 촌철살인의 패러디엔 지지자들이 열광한다. 그러나 언어도 한계가 있다. 격조 높은 풍자와 맛깔스런 해학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반면에 조롱과 막말은 나쁜 언어유희다. 언어와 행동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 또한 다양한 작품 창작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예술가들은 각자가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에 속한다. 그러나 혼자서 즐기려고 작품을 만들지 않은 이상 표현의 자유에는 나름의 규범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오후부터 서울 국회 의원회관(2층) 로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3 굿바이전 인 서울’(굿바이전) 전시회가 취소됐다. 이 전시회는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굿바이전시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민주당 ‘처럼회’ 소속인 김용민·이수진·장경태·최강욱 의원과 무소속 민형배·윤미향 의원 등 국회의원 총 12명이 공동 주관했다. 국회사무처의 허가를 받아 80여 점의 작품을 닷새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국회사무처가 전시회를 앞둔 9일 새벽 작품을 전면 철거했다. 철거된 80여 점의 다수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작품들이었다.조선일보는 해당 전시를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막았다는 점에 주목했고, 한겨레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했다.조선일보는 기사를 통해 “논란은 윤 대통령이 나체로 김건희 여사와 칼을 휘두르는 듯이 묘사한 그림 등이 다수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술병 옆에 누워있는 윤 대통령 배 위에 김 여사가 앉아 있는 그림도 있다. 조선·중앙·동아 등 언론사 건물이 9·11 테러를 연상시키며 폭파되는 것처럼 묘사된 그림, 전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기자들을 희화한 캐리커처, 핼러윈 참사 희생자 110명의 실명이 적힌 종이도 전시 목록에 포함됐다”고 했다.굿바이전 전시회를 허가한 국회사무처는 작품들을 본 뒤 8일 세 차례에 걸쳐 자진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냈으며, 내규에 따라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 사무총장이 회의실·사용을 불허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조선일보는 “애초 이 내규를 위반하지 않는 조건으로 로비 사용을 허가했는데, 행사 주최 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최 측이 자진 철거에 불응하자 국회사무처는 이날 밤늦게 그림들을 강제 철거했다”고 했다.또한 조선일보는 “민주당은 2017년에도 국회에서 마네의 ‘올랭피아’를 흉내 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그림 전시를 주선해 논란이 됐다. 당시 전시회 제목과 이번 제목도 비슷하다. 작가란 사람들도 그때와 상당수 겹친다. 전시물의 질, 민주당 의원들 수준 모두 변함이 없다”고 했다.반면 한겨레는 ‘표현의 자유 침해’를 언급하며 “국회사무처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풍자한 미술작품 전시회를 기습 철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무처 쪽은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 취소할 수 있다’는 국회 내규를 들었지만, 규정이 모호한 데다 기준 없이 모든 작품을 철거한 상황이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또한 “철거된 작품 80여 점의 다수는 윤 대통령 부부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들이다. 국회 사무처 쪽은 애초 전시회를 허가했다가 작품을 확인한 뒤 8일 저녁 7시께가 돼서야 ‘작품을 밤 11시까지 자진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윤 대통령 부부 풍자화가 ‘비방’에 해당한단 취지다. 국회사무처는 이후 행사를 주관한 민형배 의원실 쪽에서 즉답을 주지 않자 9일 새벽 2시께 작품 전체를 철거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한겨레는 이어 “앞서 2017년 20대 국회에서도 표창원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전시를 주관해 ‘당직 정지 6개월’이라는 당내 징계를 받은 적이 있긴 하나, 국회사무처가 직접 작품 철거에 나선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여의도 국회가 수준 낮은 언어의 생산지가 돼선 안 된다. 그 이유는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 특히 예술과 외설의 구분을 어렵게 하는 이유는 기준이 시대와 민족, 사회 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는 수많은 가치관들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다원화 사회이며,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뚜렷하고 객관적인 구별 기준의 마련 또한 쉽지 않다.누구나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像)은 벌거벗은 채 성기를 드러내고 있지만 이를 ‘음란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다”는 모호한 잣대에 의해 ‘음란물’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은 예술가의 경우는 종종 있다. 오래 전, 유명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 ‘천국의 신화’ 가 외설 시비에 휘말려 많은 만화가들이 절필을 선언하는 소동이 있었다. 또한 소설가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 연세대 마광수교수의 ’가자, 장미 여관으로‘ ’즐거운 사라‘ 등의 작품들이 ’외설‘로 분류되어 한 때 법의 도마에 올라 실형을 받은 적이 있다.표현의 자유에서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기준에는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데 ‘음란성’ 이란 다소 모호해 보이는 기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 ‘선량한 도의 관념’의 척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음란성 여부가 관건인 개개의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수많은 논란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철거된 대통령 풍자 작품에 대한 국회사무처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예술작품의 판단 역시 개인의 독단적인 주장보다는 예술가의 창작 동기와 해당 작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