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파리에 혼자 살고 있고 최근 까미노를 ‘아무 생각 없이’ 힘겹게 완주하고 왔다는 스물여섯 살의 C는 내 휴대전화기에 순례길 알베르게(숙박업소) 예약용 앱을 깔아 주고 피레네 국립공원 인근의 호텔도 예약해 주는 등 큰 도움을 제공했다. C는 외려 자신을 칭찬하는 나를 향해 ‘그 연세에 혼자 다니시는 게 놀랍다.’를 연발하며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C가 떠나고 D가 투숙했다. 검고 탄탄한 체격이 운동선수 같다. 아니나 다를까. 대구의 어느 대학교 축구선수 출신이란다. 최근 군 제대 후 축구를 접고 인테리어 쪽으로 진로변경을 시도 중이라고 한다. D는 일본을 수시로 오간단다. 특별한 목적 없이도 ‘그냥 수시로’ 간단다. 시간도, 비용도 큰 차이가 없으니 기왕이면 밖으로 간다는 얘기였다. D에게 도쿄나 나고야는 외국이 아니다. 그냥 국내도시처럼 여긴다. 머리가 복잡할 때도, 심심할 때도 서울이나 광주 가듯이 훌쩍 다녀온다고 한다. ‘이불 밖은 위험해’를 입에 달고 사는 기성세대에 날리는 ‘통쾌한 똥침’이 아닐 수 없다.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친구는 E다. E는 같은 방에 묵은 게스트는 아니었다. 어느 날 밤 거실 겸 주방에서 여행관련 메모를 하며 ‘파리의 밤’을 홀로 즐기고 있을 때였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출입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키는 작아도 다부진 체구의 한 청년이 들어왔다. 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있다.E는 왼손에 반쯤 남은 맥주병을 들고 홀짝 거리면서 처음 보는 한국의 늙은이에게 웃으면서 꾸뻑 인사를 한다. ‘늦게까지 파리의 밤을 맘껏 즐기고 오는 모양’이라고 내가 화답하자 축구경기(프랑스 리그앙 최종전)를 보고 온단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유니폼 뒤에 메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메시 팬이냐니까 메시 팬은 아니고 음바페 펜이란다. 오늘 리그 최종전에서 음바페의 멀티 골로 파리 생제르맹(PSG) 팀이 5대 0으로 승리하고 우승해서 기쁘다고 연신 싱글벙글한다. 한국청년이 K리그가 아닌 프랑스 리그앙 팬이 되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응원하며 최종전을 ‘직관’하고 우승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삶이 대견하고 부럽다.스물 네 살인 E도 역시 혼자 여행 중이란다. 왜 친구들과 함께 다니지 않느냐니까 단지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라고 대답한다.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글로벌하게 사느냐고 물으니 아버지 덕이란다. 아버지가 사람은 바깥세상을 다녀봐야 한다면서 어릴 때부터 해외를 다니라고 했단다. 당시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단다. 최초의 나 홀로 해외여행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는 말에 ‘입틀막!’ 말이 안 나온다. 그때 영국을 다녀온 이후로는 해외여행이 일상이 되었단다. 나는 부지불식중에 ‘정말 존경스러운 아버지’라고 하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확실한 꼰대본능을 노출하고야 말았다. 다행히 E도 자금은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답해준다. E는 건축을 전공했으나 미술을 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술을 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E는 내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관람을 ‘강추’해 주었다. 덕분에 계획에 없던 오르세 미술관에 들러 고흐와 세잔도 보고, 쿠베르와 마네를 만나는 감격도 누렸다.당시 파리 민박집에서 안면 튼 한국 청년들은 모녀 간, 친구 간에 온 두어 팀 외에는 거의 혼자 온 친구들이었다. 까미노에서 만난 친구들도 대부분 혼자였다.심지어 영어도 못해 구글 번역기에 의지해 나 홀로 여행 중인 젊은 여성도 보았다. 나중 까미노를 마치고 포르투갈의 포르투, 리스본을 둘러본 후 마드리드 터미널에 갔을 때 만난 여행자였다. 혼자 다니기 두렵지 않냐는 물음에 그녀는 ‘젊으니까요’라고 답하고 리스본으로 떠났다. 그녀에게는 아직 내게도 없는 여유가 넘쳤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는 말대로라면 나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꼴이었다. 그들에겐 젊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죽고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는 말은 적어도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영원한 청춘으로 살아갈 자격을 갖춘 듯해 보였다. 부러웠다. 리스본으로 간다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젊으니까요.’함께 가면 관광이 되고 홀로 가면 여행이 된다. 관광에는 즐거움이 있고 여행에는 충만감이 있다. 인생도 관광객으로 살든 여행자로 살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홀로 미지의 세상과 두려움 없이 접촉하는 여행자의 삶을 선택한 그들은 25세에도 살아 있고, 75세에도 살아있을 영원한 청춘들이었다.‘광야로 내 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충분한 영감을 준다. 콩나물이 아닌 콩나무가 되어가는 그들의 앞날에 경배! 젊은이들이여, 잊지 말아 주기를. 여기 콩나물로 늙어온 중 하나가 그대들의 앞날을 축원하고 있음을.그들에게도 흠결이 없지는 않았다. 꼰대적 시각에서 볼 때 딱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들이 한결같이 파편적이라는 점이었다. 동년배들 끼리 만나면 바로 친구가 되던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달랐다.이 얘기는 당시에 남긴 나의 메모로 대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부모세대와는 다르게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모습, 담대하게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적극적 모습 인상적이나 딱 거기까지. 청년들은 자기들끼리는 먼저 말 걸지 않고 데면데면. 내가 뭘 물어 볼 때도 처음엔 대답을 잘 하다가도 더 가까워지는 것은 꺼리는 기색역력. 이건 이해가 됨. 어른은 어차피 부담스런 존재니까. 근데 또래들과도 별로 친해지려는 모습 없어. 나 홀로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겠지 애써 이해해 보는 밤.’그래도 그들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었다. 어머니의 강권에 마지못해 시작한 까미노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걷고 있는 미국교포 2세 지은 씨, 이번이 세 번째라는 까미노 덕후 정화 씨, 그리고 지금 만난 가희 씨까지 그들은 피동적, 수동적인 기성세대와는 다른,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여행자들이었다.그들의 꿈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그들의 청춘이 오래오래 푸르기를, 그리하여 그들의 생애가 오래오래 강물처럼 유현(幽玄)하고 장엄하기를.......아마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경찰과 연락이 닿았는지 권 선생님이 무사히 짐을 찾았던 것 같다. 인근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할 때 짐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레스토랑으로 간 건 2시쯤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근처 알베르게에 투숙한 베드로 신부님과 신부님이 각별히 챙기는 지은 씨. 권 선생님, 가희 씨, 넷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어제 프로미스타로 가던 길에 피오호 샘 쉼터에서 헤어져 뒤쳐져 오고 있는 정화 씨가 어디쯤 왔는지 ‘톡’으로 물어보니 6킬로미터 뒤에 있는 직전 마을에서 점심 먹는 중이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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