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해진 척회사에서는 손인 척 일하지술자리에서는 입인 척 웃고 떠들지거리에서는 평범한 발인 척 걷지슬픔을 들킨다면사람들은 곤란해 할 거야 나는 부끄러워질 거야네가 떠오를 때마다고개를 흔들지 몸속 깊숙한 곳으로 밀어두지구덩이 속에서 너는 울고 있겠지만내가 나에게 슬픔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모르는 척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때까지괜찮아진 척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슬픔을 쉽게 드러내기는 힘들다. ‘사람들이 곤란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과 별개로 여기고 그 슬픔에 동조할 수 없는 마음이 일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을 수도 있어서이다. 슬픔의 감정이 결코 같아질 수 없는데 같이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슬픔의 사람에게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을 슬픔의 사람은 아는 까닭이다. 내 슬픔은 어디까지나 내 것이기에 더 슬프다. 위로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기에 더 슬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을 숨긴다. 어떤 자리에서건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누구하고 만나건 평온하고 고요한 일상을 잘 보내고 있는 척 한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얼굴에 수심이 쌓여 보인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피곤해 보인다”고 한다. “일이 많은가 보다”고 한다. 그러면 본인조차도 그 말에 동조하면서 자신을 속이려 든다. 슬픔은 ‘피곤’때문이라고… 과연 그럴까.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슬픔’이라는 감성에 스스로를 파묻은 적이 있을 것이다. 슬픔은 그 슬픔을 준 사람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 불가능할 때가 많아 슬픔이 저 가슴 깊숙이 숨어버린다. 어쩌겠는가. 슬픔을 한 켜 또 한 켜 접는 일이 인생인 것을…보듬고 살아가는 일이 익숙해지기를 바랄 뿐인 것을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