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일기장에는작은 파편들이 널려있고가을이 데려 온 바람놀다간 자리서 햇볕 냄새가 난다툇마루서 뒹굴던 고슬한 추억손바닥으로 만지고 쓸어보면햇살처럼 보드랍고 따뜻해속절없이 내려놓는 한 조각 그리움찬바람 불어 시린 속일상 허기 달래면동강 난 필름마주보고 웃는다장독대 항아리 속 웅크리고 있던 홍시외할머니 손에서 단내를 풍기고까치밥 쪼던 까치한낮 풍경이 되다꼬물대며 하냥 기어가는사랑의 자취들우화의 날갯짓 소리에불빛 찬란하게 몸 바꾼 뜨락가뭇없이 떠나가는파편 한 조각 집어 들고무심의 공덕이라해조음에 하늘만 본다 《2023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외갓집’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따스하다. 한동안 젖어들게 하면서 한껏 푸근해진다. 시인의 일기장에 외갓집에 대한 추억이 기억의 ‘파편’으로, ‘동강난 필름’으로 남아 있었나보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영상들로 살아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외갓집은 늘 외할머니의 두텁한 손맛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손으로 쓰다듬어 주시고 토닥여주시며 이 세상 가장 큰 사람으로 만들어 용기까지 주시니 그 정서가 현재의 시련과, 고난을 견디게 해주고 부셔지지 않을 단단한 자아를 형성케 했다. 외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기억, 나도 가지고 있다. 외갓집의 귀중한 기억들을 작품으로 완성한 윤연옥 시인의 당선을 축하드리며 작품세계가 ‘무심의 공덕’으로 이어나가시길 다시 한 번 축원해본다<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