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디선가 ‘안녕하세요?’하는 한국어가 들린다. 돌아보니 마당 저 쪽에서 한 무리의 여자 순례자들이 우루루 어딘가로 바쁘게 몰려간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다시 ‘안녕하세요?’하며 또 인사를 한다. 외국인들 속에 한 한국여성이 보인다. ‘나를 아세요?’ 물으니 신부님이랑 함께 보았단다. 가만히 보니 까미노 초반 수비리에선가 베드로 신부님이 인사시켜 준 미국 교포2세 지은 씨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순례를 시작했다며 한숨을 푹푹 쉬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애기처럼 앳된 얼굴에 희고 약해 보이던 피부는 그새 시골 아낙처럼 검게 그을렸고, 고생 모르고 자란 듯 여리여리하던 몸은 어느새 단단히 여물었다. 내가 단박에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애기 같더니 이제 어른이 다 된 것 같다’고 해 주었더니 ‘그래요?’하며 반색한다. ‘처음보다 활기찬 모습을 보게 돼서 좋다.’고 하자 ‘고맙다’며 활짝 웃는다. 수비리에서 처음 만나고 하루, 이틀 지난 후였을까. 어느 마을에선가 잠시 앉아 쉬고 있는 중에 등 뒤에서 누군가 ‘안녕하세요? 먼저 갑니다.’하기에 돌아보니 지은 씨가 군인처럼 씩씩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전날 한숨을 푹푹 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반전에 깜짝 놀라며 덕담을 해 준 이후 오늘 또 다시 놀라게 된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의 지은 씨와 지금의 지은 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던 ‘애기’는 ‘까미노에 진심’인 완벽한 순례자로 변신해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일까. 아쉽게도 우리는 더 이상의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다시 만날 기회가 오지 않아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변화는 까미노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어머니의 강권에 의해 나선 길이었어도 막상 걸어보니 ‘이거 뭐지? 생각보다 괜찮네.’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여기 안 왔으면 어떡할 뻔?’ 하는 단계까지 이른 게 아닐까 싶다.마치 억지로 먹기 시작한 음식이 먹다보니 제대로 ‘취향저격’인 경우에 비할까. 아니면 <장자>의 여희에 비할까.<장자> ‘제물편’에서 장자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자문하며 ‘애(艾)’라는 곳의 오랑캐 딸 여희(麗姬)의 이야기를 꺼낸다, ‘여희가 처음 진나라로 끌려갈 때는 통곡 했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호화롭게 살게 되자 지난날 울었던 것을 후회했다’는 것이다.지은 씨도 지금 마지못해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던 그때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보다도 더 빨리 까리온까지 온 것을 보면, 저렇게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해 보인다. ‘기왕 출발한 김에 한 번 가 보자.’ 하고 막상 걸어보면 까미노는 걸을 만하다. ‘기왕 태어난 김에 한 번 살아보자.’ 하며 막상 살아보면 인생도 살아볼 만하다. 딱 한 번이니까 뭐 부담도 없고.권 선생님이 체크인을 도와주겠다며 따라오란다. 영어에 능통한 권 선생님 덕분에 리셉션을 찾아 간단하게 체크인을 했다. 침대를 배정 받고 보니 권 선생님과 같은 방에 권 선생님 옆 침대다. 여느 알베르게와는 다르게 2층 침대가 아니라 좋다. 2층 침대는 오르내리기 불편한 점도 그렇거니와 1층을 사용하더라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파트 층간소음 못지않은 층간 흔들림도 그렇고 수시로 윗 침대에 머리를 부딪치는 접촉사고도 그렇다. 베드버그 방지용 베드 커버를 씌우는 중에 젊은 한국여성 하나가 들어오더니 입구 쪽 침대에 짐을 푼다. 까미노에서 만난 친구가 몇 시간 뒤처져 오고 있다면서 침대가 모자라 체크인을 못 하면 어떡할까 조바심을 낸다. 이런 큰 규모의 알베르게는 선착순 입실이기 때문이다. 가희 씨는 홀로 까미노를 걷고 있단다. 혼자 외국 여행을 하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부모세대는 ‘악착같이’ 사느라 한갓진 나 홀로 여행은 언감생심인 반면 젊은 세대는 혼자 부담 없이 해외를 오간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의 한인민박집에서 며칠 머물 때였다. 나와 세 젊은이들이 4인실 방을 공동 사용했다. 모두가 나 홀로 여행자들이었다. A는 스위스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도 갖고 있다고 했다. 두어 달 전에 까미노를 완주하고 왔다는 스물여섯 살의 A는 ‘지금쯤은 까미노에 순례자들이 많아서 줄을 서서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내 걱정까지 해 주었다.A는 스위스 물가가 너무 비싸 파리에 살기 위해 집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스위스에서는 평범한 한 끼 식사비가 한화 4,5만 원 선이란다. 내가 이번 배낭여행 리스트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위스를 제외하게 된 건 A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이 한인 민박집은 파리에 놀러 올 때마다 오는 곳이라고 했다. 다음날 그는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저렴하게 구했다며 떠났다. 말 그대로 글로벌하게 사는 청년이다. 불현듯 서글피 늙어가는 자신이 겹쳐 보인다. 그 침대를 이어받은 투숙객 B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B는 방문을 열고 들어 올 때부터 특별했다. 후줄근한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라 말쑥한 캐주얼 정장을 한 차림새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른 체형에 댄디한 스타일이었다. 웬만한 파리지앵 못지않은 멋쟁이였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라면 딱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었다.방에 들어선 B는 곧장 대형 검정 트렁크를 바닥에 뉘더니 능숙하게 옷가지들을 꺼냈다. 옷은 세탁소에서 금방 찾아온 듯 구김살 하나 없다. B는 그 자리에서 다른 캐주얼 정장으로 환복 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지고, 귀걸이를 달고, 향수를 뿌렸다. 검은 구두는 그의 청춘만큼 반짝거렸다. 젊은이들은 꼰대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에 질색이라는 걸 아는지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아하니 부잣집 도련님 같은데 어찌 이리 궁벽진 민박집에 드셨냐?’고 하니 돌아온 대답이 역시 고급지다.‘그렇잖아도 항상 호텔을 이용하는데 예약을 하려고 하니 호텔마다 객실이 없거나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서 여길 왔습니다.’그 무렵 파리는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 파리 생제르맹(PSG) 팀의 최종전을 앞두고 숙박난이 극심했던 터였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스물아홉이란다. 나는 정말 아름다운 나이라고 부러움을 표했다. 나는 ‘서른을 목전에 두었던 그 시절,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새 갑절이나 더 많이 살았다.’고 꼰대질을 이어갔다. 다행히 B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도 비슷한 기분이 든다며 20대의 마지막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공무원을 그만 두고 혼자 여행 중이란다. 배낭여행은 못하는 체질이라 항상 대형 트렁크를 가지고 다니며 호텔을 이용한다는 B는 지금 미슐랭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간단다. 그가 나간 방문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스물아홉 살의 B와 스물아홉 살의 나를 번갈아 떠올렸다. 만 32년 전 그 청년의 꿈은 어디로 갔을까. 만 60의 나이에 처음으로 홀로 배낭을 짊어지고 유럽으로 건너온 이 낯선 늙은이는 누구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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