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 "전쟁을 소홀히 한 민족이나 국가는 수모를 당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이해하고, 전쟁에 대비하라.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Slow but Steady) 노력하다 보면, 인생 후반전에서 누구나 역전승을 이룰 수 있다"`한국 군사학의 대부` 고(故) 풍석(風石) 이종학(李鍾學, 93, 서라벌군사연구소장) 박사가 지난달 29일 향년 94세로 경주시 평동 소재 서라벌군사연구소에서 별세했다. 이 박사는 192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포항 동지고 1회 졸업생이며, 1954년 공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 소위로 임관해 통신장교로 근무했다. 공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군사학과장, 국방대학원 교수, 교수부 제3 학처장 등을 지냈다.그는 최근까지 전공 강의 외에 `50대의 인생전략`에 대해 손자병법을 응용한 인생 강연을 해왔다. 몇 년 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백 여 명을 모아 놓고 특강을 했다. 강연은 3시간 너머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군사학 대부` 서라벌군사연구소장이종학 박사는 국내에서 최초로 군사학 체계를 학문으로 정립시킨 `군사학의 대부`로서 `군사학의 태두(泰斗)`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쟁론`을 가르쳤고, `현대전략론`을 통해 군사학 이론의 틀을 잡았다. 그의 군사학은 미국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 1897~1989)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웨드마이어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발발을 우려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주장했던 동북아 군사 전략통이었다.그는 1976년에는 한국군사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국방대 재임 때인 1980년에 국내 첫 군사학 정교수로 교육부 승인을 받았다.58세 때인 1987년, 국방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경주시 평동에 서라벌군사연구소를 세웠다. 그로부터 35년 동안 오전에는 농사를 짓고, 오후에는 집필에 몰두하는 느림보의 삶을 부인 최정화 여사와 이어왔다.△ 90세 최장수 현역 교수, 40억원 남다른 기부그는 73세 때인 2002년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군사학과 설립에 산파 역할을 했다. 84세 때인 2003년 국내 최초 명예 군사학 박사 학위를 충남대로부터 받았다. 그는 앞서 서울의 주택을 군사학발전기금으로 공군사관학교에 기부했고, 2003년 충남대에 군사학 석사 과정을 개설하면서 강화도의 토지와 함께 군사학진흥기금으로 장서 1만권을 기증했다. 평생 40억 원 상당의 기부를 실천했다.그는 2019년 충남대 군사학부 특임교수를 그만둘 때까지 국내 최고령 현직 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군사전략론`(1987, 박영사), `군사학개론`(2009, 충남대 출판부), `한국군사사 연구`(2010, 충남대 출판부) `6·25 전쟁사: 그 진실과 교훈을 찾아서`(2001, 서라벌군사연구소 출판부)와 `6·25전쟁이란 무엇인가`(2011, 충남대 출판문화원) 등 일문을 포함한 40여권의 국내외 저서를 출간했다. 발표한 국내외 주요 논문은 70여 편이다.최근 `60대 이후의 인생 전략-서라벌에서 온 편지`(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를 출간해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군사학에 관한 연구화 왕성한 집필활동을 과시했다. 고인은 최근 6·25 전쟁 과정에서 백선엽 장군의 공적을 재평가하는 저서를 쓰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알려졌다.그는 1969년 경희대 대학원에서 사학과를 졸업, 만학도로서 군사학의 뿌리를 찾으려고 신라 화랑 등을 연구했다. `광개토왕비문의 신연구`(1999, 서라벌군사연구소 출판부),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2003, 주류성) 같은 역사 관련 공저도 참여하기도 했다. 또 "화랑세기는 진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제는 별이 된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지난해 가을 이종학 박사 부부가 사는 경주시 평동의 서라벌군사연구소를 찾았다. `풍석재`(風石齊) 당호(堂號)가 붙어있는 이 박사의 집은 고택이다.풍석재 마당에는 소나무와 매실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나무 의자와 농사 도구들도 눈에 띄었다. 이 박사가 수시로 마당 밭을 가꾸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이종학 박사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 일제의 해군기지가 있었던 진해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중고등학교 통합과정이었던 진해의 중학교는 군대에 필요한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데 교육이 맞춰졌다고 한다.그러던 중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찾아왔고, 이 박사는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마무리하지 못한 고등학교를 밟기 위해 동지고 1회 입학생이 됐다. 동지고는 제17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지난달 말 특별사면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제9회 졸업생이다.이제는 별이 된 이 박사는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질곡의 시대에 프로메테우스의 삶을 살아가다 역경을 헤쳐가는 지혜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간 풍석 이종학 박사의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