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춥고 눈이 쌓이는 날엔신부야 가난한 우리가 더 깊은 산골로 가서산골로 가서 눈에 묻혀한 스무 살 쯤으로 살면 좋겠다지하수 펌프가 얼어서내가 장작을 패고 있는 사이계곡물을 길러 가는 신부야네 귀가 추위에 빨갛게 얼었구나나는 패던 장작을 내려놓고털 부숭한 산토끼나 한 마리 잡아서 그 놈의 가죽으로신부 귀를 감쌀 귀덮개를 만들어주어야겠다고가만가만 토끼 발자국을 찾아 나서겠지토끼 발자국 따라가면/ 눈 속에 먹을 것을 찾아아, 거기 눈처럼 하얀 토끼가 두 귀를 쫑긋 세우고애처로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그 놈의 귀가 내 사랑하는 신부의 귀처럼 빨갛구나//나는 토끼와 토끼의 신부와 그 어린 자식들이 안쓰러이 떠올라서마른 풀이라도 뜯어 먹으렴 하면서언덕에 쌓인 눈을 파헤쳐 주곤 모른 척/돌아서 내려오겠지자꾸만 내 신부의 빨간 두 귓불이 생각나서나는 내 겨드랑이 아래 두 손을 묻고/ 아직은 더운 체온으로 내 손을 데워서가만 물 긷고 있는 신부의 두 귀를 감싸주겠지그러면 내 손을 타고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먼 우레 소리처럼 건너갈까네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피의 온도가/ 내 손을 타고 건너오겠지소주병이 비어갈수록/ 눈은 스무 살 적 그 빛깔로 내리고내려 쌓이고 오늘은/ 군불을 조금만 넣어도 밤이 더울 것만 같고<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추위에 귀가 빨개진 신부를 위해 ‘내 겨드랑이 아래 두 손을 묻고 아직은 더운 체온으로 내 손을 데워서 가만 물 긷고 있는 신부의 두 귀를 감싸주’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그래서 ‘눈은 스무 살로 내린다’고 했을 것이다. 둘을 감싸듯 내리는 산골의 눈이라니… 그런 포근한 눈이 언제 내렸는지 아득하기만 한데 오늘따라 대금 같은 바람 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