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양대 세력이자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상주 역사에 일찍부터 필자는 의구심을 품었다. 경주에 비해 상주에 대한 사료와 발표된 내용이 빈약한 것에 대한 자연 발로적 의심이다. 20대부터 상주지역의 고분에 관심을 가졌지만 막상 수소문해 찾아간 것은 5년 전이었다. 고분군은 고대 지배 세력집단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고분을 포함해 많은 것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했다. 고녕가야왕릉과 왕비릉, 성혈석, 머리메 제삿돌, 공갈못, 남산토성, 증촌리 석불, 옥녀봉천제터를 수차례 답사했다. 이 모든 것을 한 고리에 묶어내는 끈이 삼국사기 지리편의 고녕가야며, 삼국유사 5가야조의 함창고녕가야의 기록이다.무수한 사료와 자료가 넘치는데도 학계에서는 함창고녕가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일관해 왔다. 교과서에도 수록되지 않고 여러 가지 이론을 제기해 사장시키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해 할 수 없는 사학계와 행정당국의 처신에 대해 그 원인을 찾아가니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의 일제식민정책에 닿아 있었다. 조선총독부, 만주철도회사, 일본군참모본부 더 나아가 일본 천황가를 관장하는 궁내부까지 뿌리가 닿아있다. 조선의 얼굴로 최남선, 이완용, 박영효 등을 내세웠으며, 심부름하는 촉탁으로는 이병도, 신석호 등 젊은이들을 포진시켰다. 실무진에는 나가 미치오, 이마니시 류, 쓰다 쏘키치, 쓰에마쓰 야스카즈, 다카하시 토오루 등 동경제국대학의 쟁쟁한 학자들이 버티고 있다. 그 외 데라우치 마사다케를 비롯한 총독과 정무총감이 진두지휘해 조선 5천년사를 일본지방사로 둔갑시켰다. 조선총독부편찬 ‘조선사’에서 ‘가야’는 4세기 초 한반도 남부에서 형성됐으며, 일본의 식민지로써 ‘임나’로 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함창고녕가야는 1세기에 건국돼 3세기 중엽에 멸망했으며,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낙동강 중상류지방이다. 즉 함창고녕가야의 존재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 논리를 뿌리부터 흔들어 버린다.해방이후 정치적으로 많은 부분이 혁파됐지만 역사를 비롯한 학술원 관계는 조선사편수회를 비롯한 제국대학 출신들이 장악했다. 식민사관 청산은 고사하고, 일제 강점기 역사관을 더욱 공고히 했으며, 그들의 학문을 이수한 사람들만이 역사학계에 종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병도와 신석호의 ‘조선사편수회’ 경력은 매국의 치부가 아니라 떳떳한 실증사학의 효시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문교부장관과 학술원장을 지냈으며, 그의 손자 역시 서울대학교 총장을 거쳐 대한민국학술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러한 학맥구조가 반민족 식민사학을 청산할 수 없게 하며, 주체적인 역사학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식민사학의 주요 골격은,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은 중국사서에 여러 번 등장하는 ‘하북성’이 아니라 북한의 ‘평양’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한은 고대 일본이 식민지로 다스렸다는 임나일본부 설이 대표적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은 만주와 같은 북방영토와 상관없으며, 반도안에서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로 형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고대국가 건국연대를 일본보다 늦추고, 통일신라 등 국경선을 임의로 조작해 식민통치에 유리하게 개작했다. 지난 12월 1일 필자는 상주박물관에서 오봉산 고분발굴 학술발표회가 있어 참석했다. 5시간 가량 학술발표와 토론자의 발표를 듣고 20여 분 방청객의 질문시간이 주어졌었다. 발표자들의 조심스럽지만 상식적인 발표를 듣고, 이제는 진실이 새어나오는구나 하는 심정을 굳혔다. 발굴된 유물을 발표하면서 3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유물이 출토됐음을 학술보고서에 서술했다. 낙동강을 수계로 해서 함창의 고대국가와 창녕의 비화가야, 김해의 금관가야를 비롯해 일본열도까지 활발히 교류했음을 도표를 보이면서 설명했다. 방청객에 있던 필자는 손을 들고 발언의 기회를 얻었다. 낙동강 수계를 이용해서 여타 가야와의 활발한 교류에 대한 발표를 듣고, 이병도나 김태식의 학술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3세기 유물을 적시했다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고녕가야에 대한 기존 학술을 능가한다. "유감이지만 몇 가지 질문을 드릴테니 답변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번 학술발표는, 토기나 금속의 제작 연대를 나열하는데 치중했으며, 전체 무덤형태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마치 산과 숲을 놓치고 나무만 헤아리는 형태를 취했다. 상주 함창에는 오봉산 1000기와 병풍산에 산재한 1500기를 합하면 2500여 기의 고분이 현존하고 있다. 이렇게 산능성에 산재한 고분군형식이 서라벌계통입니까? 가야계통입니까? 또한 신라 고유의 묘지양식은 적석목곽분이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고녕가야의 다양한 증거물을 외면하고 근거도 없는 일본서기의 다라국과 기문국을 합천과 남원에 배정해 유네스코에 가야고분 등재신청을 했다. "이것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선정인지 답변을 부탁드린다"고 했다이에 대한 학술발표자는 난색을 표하며, 본인들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음을 양해바란다고 했다. 이에 좌장을 맡은 김용성 한빛연구원장에게 답변을 요청했다. 그 역시 그런 자리에 있지 않다고 발뺌을 했다. 무덤 형태와 관련해서는 적석목곽분을 지배층 무덤의 기본형태로 하는 서라벌만이 신라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는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신라가 다른 소국을 침략해서 그 무덤 형식을 빌어서 함창에 이식했단말인가? 서기 300년 이후에 상주지역을 점령해서 서라벌의 무덤형식이 아닌 다른지역의 무덤형식으로 3000기가 넘는 가야고분형을 쌓았다는 결론인가? 이는 비유하자면 영국이 인도를 정벌해서 인도문화를 표준으로 다른나라에 이식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발굴된 유물은 아직 탄소연대 측정을 하지 않았으며, 다른지역의 유물과 단순비교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엄연히 적시돼 있는 사료마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비교 판단을 믿으라는 것인지? 하늘은 스스로 역사를 지키고 회복하려는 민족에게 번영의 열쇠를 쥐어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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