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학교 담장 낙서에 기대어힘겹게 버티던 자전거 다리에녹이 번져 가고 있었다속도감에 대한 욕심, 원주율로 나누어붉은 바퀴살 핑그르르 돌려 보고 있었다먼지 내려앉아 삐딱하게 깨어진 거울에지나가던 부전나비 들여다보곤 제 날개용수철로 튕겨 보고 있었다졸린 눈꺼풀 비스듬히 닫아걸고낡은 축구공 따라다니던 깜장고무신의 수고와헐떡이며 따라오는 흙먼지의 집요함 속에발등의 까만 때 포물선 생각하며 고개 저었다잠깐 여유에 번지는 질경이와 망초대구석 쪽부터 자리 잡고는 버티고 있었다구름 두드리는 종소리에 잠깨는 페달시간 풀밭의 흔적이 문을 닫고 있었다아무렇게나 짓이겨져 흩어진 풀잎 냄새가씨앗과의 약속을 절반만 지키고 있었다아버지는 자전거에 눌어붙은 오래된 녹으로무릎에서 발목까지 관절이 삐걱거렸다가쁜 숨 몰아쉴 뿐이었다 아버지만큼자전거도 내리막길을 참 힘들어 하는 게 보였다꽃 무릇 한 무더기 저 혼자 심심하다고<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불러오고 그 추억이. ‘구름 두드리는 종소리에 잠깨는 페달’처럼 녹이 슨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부전나비, 낡은 축구공, 깜장고무신, 흙먼지가 공존하는 곳. 새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곳이다. 밝고 환한 곳이기 보다 어둡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과거의 흔적만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곳, 폐교다. 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폐교처럼 보이는 까닭은 왜일까. 많은 이야기가 간직한 채 삶의 내리막길에 들어선 아버지가 무릎에서 발목까지 관절을 앓고 있다. 활기찬 시절은 없었던 것처럼 힘들어 보인다. 텅 빈 운동장 귀퉁이에 질경이와 망초가 누구를 기다리듯 버티고 있으나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 어디선가 흘러 든 풀잎 냄새가 그나마 씨앗의 미래를 점치고 있을 뿐이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스러져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미래가 자라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아버지는 낡아 가지만 아들은 새로워져 가고 있는 것이다. 폐교의 수채화가 서서히 밝은 색으로 채색 되어가고 있다. <수필가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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