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씻어 안치다, 문득고양이 밥부터 챙긴다 이럴 땐 나도 발이네 개인 것처럼착하다작은 밥그릇 앞에서한순간 세상의 전부가 된 밥그릇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밥그릇 속에 머리부터 집어넣고서는굳건하다 아기 고양이, 아기를 버티고 있는네 개의 발새가 온다, 나비가 온다, 발을 가지러 아기를 가지러운 좋은 날이면귀뚜라미를 톡톡 두드려 울음을 꺼내듯 한 생을건너밥그릇이다, 하나뿐인 밥그릇 하나를 지키기 위해버티고 선 저, 네 개의 발은 잘려도 그 자리를지키고 있을 부장(副葬)이다죽어서도 뛸 수 있는 심장의 상상력이다당신을 기다리는 일이그랬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삶을 지킬 수 있는 버팀목이 있다면 아마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하나뿐인 밥그릇’ 다른 하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시인은 단정 짓는다.달리 해석하자면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두 가지는, 육체를 지키는 밥과 정신을 지키는 사랑인데 시인의 표현은 참으로 비장하다. 진실의 비수를 품고 있다. 그저 지나치는 언어의 유희가 아니란 의미다.‘한순간 세상의 전부가 된 밥그릇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버텼던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네 개의 발은 잘려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부장(副葬; 임금이나 귀족이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사용하던 여러 물품을 함께 묻음)’ 즉 밥그릇이었다. 그만큼 간절한 것이었다. 그 간절함마저도 귀결되는 것이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마음 하나로 버텼기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다는 것. ‘죽어서도 뛸 수 있는 심장의 상상력’을 가진 사랑이 섬뜩할 정도로 진실하게 다가왔다. 그런 마음이라야 누구를 위해 ‘밥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밥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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