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몇 개 머윗대 한 다발좌판 벌이러 임실댁 절뚝이며 장에 갔다한쪽 다리 고장 난 몸뚱어리가 전 재산열무 한 단보다 비쌀 것도 없는 것 늘 지고 다니니뉘 와서 가져갈 것 있으면 가져가 봐라빈집 문고리에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숟가락자물쇠 혹은 빗장,뱃장 간단하다 단호하다거룩한 것은 그렇듯 단순하다숟가락 하나 들었다 놓는 일세상에서 가장 큰 문은 사람의 입그 문 열고닫는 열쇠도 숟가락끙, 이분음표로 내려놓을 때까지그 거룩한 숟가락질을 위하여과거 보러 가듯 새벽같이 임실댁 장에 간 사이빈집 혼자 적요를 숟가락질하고 있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숟가락’ 하나로 ‘세상의 문’을 바라볼 줄 아는 시인의 눈에 경탄한다. 숟가락의 기능이 빈집을 지키는 ‘자물쇠’였다가 빗장이 되었다가 ‘이분음표’도 되었다. 숟가락은 밥이나 국물을 떠먹는 평범한 도구쯤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시인의 날 것 같은 싱싱한 시선에 화들짝 놀란다. 아마도 임실댁의 생활은 남루한 가정살이였나보다. ‘한쪽 다리 고장 난 몸뚱어리가 전 재산’이라 겨우 푸성귀 다듬어 좌판에서 몇 푼 받아 살아가는 것이 전부였던가 애처롭기만 하다. 거기에 숟가락을 지킴이로 내세우며 삶을 ‘숟가락 하나 들었다 놓는 일’로 본 시인은 그런 빈한한 삶조차 승화시킨다. 숟가락을 ‘이분음표’로 보며 곤궁한 삶에 밝은 에너지를 투사한 것이다. 숟가락이 꽂혀 있는 빈집은 왠지 든든하다. 쉽게 방문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한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단호함까지 보여준다. 숟가락 지킴이의 권위가 보인다. 옛 시골집에는 자물쇠보다 숟가락으로 여닫이문을 잠궜다. 안과 바깥의 경계를 창호지 바른 방문 하나가 전부인 시골집에 숟가락이 꽂혀 있으면 그 집 주인의 부재인 것을 알려 주었다.말하지 않아도 아는 일, ‘빈집 혼자 적요를 숟가락질하고 있다’는 말이 좀 좋은가 말이다. 잊고 있던 흙벽의 옛 시골집의 숟가락마저 그리워하게 하는 시 한 편이다.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