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버드나무 껍질에 세 들고 싶다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고치의 올 올을 아쟁처럼 켜고나는 그 소리를 숨차게 쟁이며분꽃 씨처럼 늙어갈 것이다고치 속이 눈부신 하늘인 양맘껏 날아다니다 멍이 드는 날갯죽지세찬 바람에 가지를 휘몰아제 몸을 후려치는 그의 종아리에서겨울을 나고 싶다 얼음장 밑 송사리들버드나무의 실뿌리를 젖인 듯 머금고그때마다 결이 환해지는 버드나무촬촬, 물소리로 울 수 있다면 날개를 달아도 되나요?슬몃 투정도 부리며 버드나무와 한 살림을 차리고 싶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깃들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버드나무 같은 사람. 가지가 뼈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푸근하고 부드럽기 때문이고, 부드러운 것이 마음의 폭이 크기 때문인 것이며 잔가지는 흔들려도 몸통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중심점을 지탱해주는 심지가 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같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에 빳빳하게 다툴 일도 없을 것이고 빠당빠당하게 자기 고집 세우지 않을 것이므로 같이 있어도 힘겹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방향을 따라 가지만 아주 가지는 않고 부드러운 것 같지만 아주 부드러운 것은 아닌, 그래서 오히려 꼿꼿해 보이는 기준점이 있어 보이는 버드나무. 그래서일까 시인은 ‘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 들고 싶다’고 한다. ‘세찬 바람에 가지를 휘몰아 제 몸을 후려치는’ 기개를 가진 버드나무라면 그의 가르침을 익히고 싶어 한다. 어떤 나쁜 소리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눈치만 보는 죽어있는 말만 그 주변에 가득 차 차츰 썩어간다. 자기를 채찍질해 줄 수 있는 말을 듣고자하는 사람에게는 주변이 파릇파릇 새 순으로 돋아난다. 자기 성찰의 새로움이 돋고 활기가 있으며 더 큰 역량으로 살아난다는 것. 새로운 ‘물소리를 꿈꾸’는 용기와 배포를 가진 사람이 아쉬운 요즘이다. 점점 ‘결이 환해지는 버드나무’같은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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