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대문 앞에 와 구걸을 하던 동냥아치가마당에 놀던 어린 내게등을 내밀자내가 얼른 그 등에 업혔다고누나들은 어머니 제삿날에 모여그 오래된 얘기를 꺼내깔깔거리고내가 맨발로 열무밭 앞까지 쫓아가널 등에서 떼어냈단다오늘도 어김없이 남루한 저녁은떼쓰는 동냥아치처럼 대문 앞에 서서나를 향해 업자, 업자등을 내미는데정말 나는크고 둥글던 그 검은 등에덥석,다시 업힐 수 있을지<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아무런 의심이 없는 어린 시절에 하는 행동은 무조건 귀엽기 만하다. 판단할 수 없으니 어떤 사람이건 믿는다. 그런 맑은 기운이 얼마나 귀여운가.거렁뱅이건 ‘동냥아치’ 건 다정하게 오라고 하면 가고 안아주면 안긴다. 아마 서너 살 전후가 아니었을까. ‘동냥아치’가 등을 내밀자 업히는데 익숙한 아이는 그 등에 그냥 업혔을 것이었다. 업힌 뒤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 사람의 목을 꼭 껴안았을 아이 -그 때 그 광경을 본 누나가 ‘맨발로 열무 밭 앞까지 쫓아가’ 아이를 떼 왔었나 보다. 데리고 왔기 망정이지 그 ‘동냥아치’를 누나가 보질 못했더라면 아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업힌 채 어디로 갔을까.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을까. 지금도 여전히 ‘저녁’의 유혹이 ‘업자, 업자 등을 내미는데’ 시인은 ‘크고 둥글던 그 검은 등에 덥석 다시 업힐 수 있을지’ 주저한다. 이제는 커버린 탓이다. 어느 한 순간의 선택이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놓는다. 이 쪽이 아니고 다른 길을 갔더라면 온통 달라져 있을 내 길이 되짚어보면 아차하는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찔해진다.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쉰다. 길을 걸으며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 자신의 곁을 지켜줬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이 있음을 증명하곤 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잊고 산다. 기로에 서 있을 때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줬던 사람들의 모습을 감회에 젖어서 회상해본다. ‘동냥아치’의 등에 업히지 않은 운명에도 감사드리며…<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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