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11월 1일이 지나고 11월 2일이다. 오늘이…한 달이 다 채워져 한장씩 달력을 넘길 때마다 서늘해져 간다. 그 중에서도 유달리 11월은 감회가 깊다. 되돌아보며 지나온 그 길을 되짚어보게 된다. 발자국을 남기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상하게 쓸쓸해지고 슬퍼지다가도 11월의 달력 앞에서는 문득!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초연해지자고 다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초월하게 되는 11월 미틈달 (가을의 막바지에 겨울이 살짝 비집고 들어오는 달’이라는 우리말)인 것이다. 11월에는 좋은 분들을 찾아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내 삶에 윤기를 입혀준 그 분들만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설렌다.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을 물처럼 받아 주시면 좋겠다. 한 분 한 분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울컥거린다. ‘지울 수 없는 이름들’이다.한 겹씩 나무들도 비우며 여백을 만드는 11월에는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에 집중해야겠다.상처나 미움은 버려서 비워야겠다는 마음, 때론 상처가 나에게 면역력을 키우는 동력이 되었다는 생각- 세상은 그저 살아지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찰해 가면서 자신에게 당부해야만 된다라는 사유-까지 하게 하는 11월이다.11월의 목표는 헛된 것들을 얼마만큼 비우느냐로 목표를 세워야겠다. 그래야 12월을 홀가분하게 맞이할 테니까. 그렇게 해야 12월을 경건한 감사로 가득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