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는 詩를 잃어버린 듯하다놀라지도 감동받지도 않는다한때는 그것이, 내가 너무 읽었거나눈이 높아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다시 지금, 아픈 몸을 이끌고볕 아래 바람을 천천히 흔들고 있는화분의 잎사귀를 바라보며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봄날 오후나는 시를 잃은 것이다처음 만난, 최초의 그녀를 잃어버리듯이내가 너를 수줍게 만났을 때너는 행간 속 넓은 페이지처럼 하얀 티셔츠에아름다운 글자의 배열 같은 긴 머리카락뜨겁게 달궈진 불덩이들을 초여름 밤바람 속으로 흩날리고 있었지얕은 땀방울 속 침묵의 향들이 은은하게 맴돌고작은 몸짓과 눈짓, 난생처음 느끼던순수한 운명, 눈동자, 서정적인 우연그 옆모습에/ 나는 한없이 슬펐고크게 매 순간 감동받았었다시집은 무수히 하루하루의 먼지처럼 쌓이고이미 지나간 것들은 달력처럼 다시 읽어도나는 그것들에게 밑줄을 긋지 않는다내 옆에 있으나/ 나는 시를 잃어버렸고너의 처음 얼굴이 지금 곁에서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그건 네 형상을 잃은 것이 아니라너를 처음 보았던 나를/ 잃어버린 것일 게다시여, 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무수한 밤하늘 별들이 내 머리 위캄캄한 공중으로부터 영원히 느리게 도달하듯이그것을 기다리진 못한 내가/ 이승의 유한함처럼 점점이 사라져 버린 것일 게다언제나 곁에 있는데 곧잘 감동하던 나여 어느 길로 소멸하였는가너는 옆에 있는데/ 어느덧 시는 나를 오래도록 잃어버리고영원한 애인은/ 지난 날카로운 밑줄에 손이 베인 채몇만 광년의 유성처럼/ 영영 나를/ 찾고 있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시인과 시는 불가분의 관계다. 시인의 ‘영원한 애인’ 같은 시가 완성되는 날은 기쁨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글자의 배열’에서 ‘서정적인 우연’을 발견하고 감동으로 시를 완결 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환희일 것이다. 또다시 그런 시를 찾아 헤매는 시인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운명 같은 시를 기다리고 있는 간절함이 있다. 그 마음이 시가 되었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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