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을 막고 있는 노폐물처럼국경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길목마다전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빗발치는 포격//유치원이 학교가 병원이 성당이/ 무너져 내리고 화마에 휩싸인다아이를 낳던 임산부가 죽었고여섯 살 난 어린아이가 죽었다//꽃향기와 풀냄새 대신 곳곳에서 검고매캐한 비명이 피어오른다//죽은 이들의 눈이 아직 다 감기지도 않았는데죽은 이들에게 진혼곡조차 들려주지 못했는데//마르지도 않은 슬픔으로 포탄은 떨어지고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망자들이 뒤엉킨폐허의 도시에서 깃발을 꽂고 축배를 들기분주한 당신들, 전생을 더듬어보면 어디쯤학살의 기억이 윤회의 징표처럼 새겨져있을 텐데 한 번씩은 서늘한 기운에 몸을/ 종종 뒤척이기도 했을 텐데//무리를 이뤄 국경을 넘나드는 저 새떼를질서와 자유, 현실과 이상으로 누구든/ 마음대로 부를 권리가 있으니그러므로 당신들 안의 신에게 모든 죄와/ 무기를 내려놓기를//욕망과 증오 대신 주머니에/ 당신들이 짓밟았던 나라의 국화가자랄 수 있도록 그 씨앗을 넣어두기를*지금이라도 참혹한 잔치를 그만두기를<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이 시에서 ‘씨앗’은 해바라기 씨앗을 의미한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국화다.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항구도시인 헤니체스크의 거리에 러시아군인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때 우크라이나 한 여성이 러시아 군인 두 명에게 다가가 “내 나라에 무엇 때문에 쳐들어온 것이냐.”고 호통을 치면서 “당신이 죽은 뒤에 우크라이나 땅에 해바라기가 자랄 수 있도록 주머니에 씨앗을 넣어 두라.”고 했다. 여성의 당당한 요구에 러시아 군인은 주눅이 들고 침략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인지했기를 바란다. 시인도 시로써 소모밖에 없는 전쟁에 반기를 들었다. 침묵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누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포격으로 생명을 빼앗아가는 잔인함을 비판하고 있다. 힘의 논리로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를 질책하는 용감한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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