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속을 천 리쯤 걸어가면 돋보기 초점 같은 마당이 나오고 그 마당을 백 년쯤 걸어가야 당도하는 집 붉은 부적이 문설주에 붙어 있는 집 남자들이 우물가에서 낫을 벼리고 여자들이 불을 때고 밥을 짓는 동안 살구나무 밑 평상엔 햇빛의 송사리 떼 뒷간 똥통 속으로 감꽃이 툭툭 떨어졌다 바지랑대 높이 흰 빨래들 펄럭이고 담 밑에 채송화 맨드라미 함부로 자라 골목길 들어서면 쉽사리 허기가 찾아오는 집 젊은 삼촌들이 병풍처럼 둘러앉아 식사하는 집 지금부터 가면 백 년도 더 걸리는 집 내 걸음으로는 다시 못 가는, 갈 수 없는, 가고 싶은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햇빛의 송사리 떼’란 말이 참 정겹다.햇볕이 옛집에 쏟아지는 모습이 마치 송사리떼 같았나 보다. 마당 한 모퉁에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지면 송사리 떼 같은 햇빛이 감꽃을 꿰어 찼다. 봄날에는 반짝이는 감꽃이 어느 새 어린 나의 보석이 되어 빛나는 목걸이로 변하곤 했다. 내 손으로 줍기만 하면 보석이 되는 감꽃이 나를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가 되게 했다. 여름날 그 옛집에 ‘바지랑대 높이 흰 빨래들 펄럭’이면 빨래 사이에 몸을 숨기고 절대 붙잡힐 것 같지 않은 숨바꼭질에 몰두하곤 했다. 살금살금 잡으러 온 술래에게 들켜서 쏜살같이 도망치며 깔깔대던 마당 넓은 집, 돋보기에 촛점이 모이 듯 모든 빛이 들어오는 집이었다. 아궁이에서 구수한 밥 냄새며 입맛 도는 참기름에 나물 무치는 냄새가 마당을 휘돌아 골목에 흘러 나가곤 했다. . 신기하게도 골목길만 들어서면 허기가 져서 고봉밥 먹고 싶고, 평상에 모이면 덜 익은 수제비도 그렇게 맛있었으니 살구나무 밑의 평상은 보물섬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꿈처럼 남아있을 ‘머나먼 옛집’이 가을이면 더욱 생각나는 것은 그 풍경의 아스라함도 있어서이지만 그 때의 그 옛사람들 때문이다. 건장한 아버지, 젊고 예쁜 우리 엄마, 장난꾸러기 오빠, 나의 천사 언니들, 그리고 어리디어린 내가 ‘머나면 옛집’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인 거다.<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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