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다대합실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나무의자일몰의 그림자 길어지면 차갑게 흔들리는철로 주변의 측백나무 사이로 쓸쓸히 흘러가는 저녁종착역을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 지루한 표정딱딱한 마분지 차표를 건네는 매표원의 가느다란 손가락아무도 일러주지 않는 출발과 도착의 낡은 시각표의미 없는 부호처럼 굴러다니는 비닐봉지너무 일찍 나온 것이다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보였지만기차는 서지 않고 역을 지나쳐 간다역을 지나쳐 가는 저 열차처럼삶도 그냥 지나쳐 가야 할 때가 있는 것일까대합실 밖에서 흔드는 이별의 손짓도더 이상 슬프지 않다이별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과재회를 꿈꾸며 사는 것도열차가 다시 제 철로를 밟고 돌아오는 것처럼생의 어느 지점에서 떠났던 사람이자신이 알지 못하는 때에한 번은 돌아올 것을 믿는 때문이고자신이 타야 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침묵이세상의 침묵으로 이해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나는 천천히 돌아서 본다수은등이 켜지기 시작하면 역 광장에이별의 그림자처럼 서성이는 작은 별이 뜨고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내가 보인다, 그러나아직 이른 시각이다, 기차가 오기에는<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가야 할 곳의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기차역의 풍경이 세밀하다. 너무 일찍 나온 것이다 그럴 때는 한가해도 너무 한가해진다. ‘낯선 사람들 지루한 표정’ 속에 자신도 그런 표정이 된다. 얼마 전 대전 역에서 3시간을 배회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대전 역에 도착하니 이미 기차는 5분 전에 떠난 상태였다. 아쉽지만 갈 곳이 없어 대전 역 내에서 배회를 했다. 그럴 때 역사 안에서 전시회도 구경하고 그 안의 음식점에 앉아 사람들의 오고 가는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바쁠 때 스치고 지나간 것들이 새삼스러웠다. 낯선 곳에서 멀뚱거리는 것보다 시간을 메꾸는 방법 중에 가장 편안했던 것은 그래도 시집을 읽는 일이었다. ‘자신이 타야 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침묵이 세상의 침묵으로 이해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비로소 그 때 이해한 것이다. 낯선 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 이해된다는 것. <박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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