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한 컴퓨터 해킹 공격이 `사이버 진주만`으로 불릴 수준의 대규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해 11월 한 경영인 모임에서 사이버테러가 "9.11테러 만큼이나 파괴적일 것"이라며 우려한 발언이다.
미국의 유력 언론사들에 이어 연방정부 부처마저 사이버테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패네타 장관의 우려가 허언이 아니었던 듯싶다.
미국이 중국·이란 등을 `용의자`로 지목한 반면 이들 국가는 강력히 부인하면서 국제적 공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에너지부도 해킹당해 = 대형 언론사들에 이어 정부 부처인 에너지부도 지난달 중순 해커들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4일(현지시간) 밝혀졌다.
AFP 통신에 따르면 에너지부는 직원들에 배포한 메모에서 에너지부 전산망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직원과 외주업체 관계자 등 수백 명의 개인정보가 노출됐으나 다행히 기밀로 분류된 자료의 유출은 없었다고 에너지부는 설명했다.
에너지부는 수사 당국과 공조해 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전산망을 복구하고 공격받은 직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워싱턴포스트(WP)·블룸버그 통신 등 미국 내 유력 언론사들도 중국 측 소행으로 의심되는 해킹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한 바 있어 이번 에너지부 테러공격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에너지부는 그러나 사이버 공격을 누가 가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이란 `용의선상` = 이러한 사이버테러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른 용의자는 중국이다.
NYT·WSJ·WP·블룸버그 등 피해 당사자들은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로 일제히 중국을 지목했다.
이들 언론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중국 최고위층 일가의 축재 관련 기사를 실었다가 공격을 받았다는 점도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NYT·WSJ는 사이버 공격의 목적이 중국 관련 보도를 감시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작년 미 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이 사이버 공간에서 미국의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란도 용의선상에 오르내린다.
패네타 장관은 지난해 10월 한 발언은 이란을 겨냥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워싱턴DC가 하루에도 수십만 번의 사이버공격을 당한다며 "이제 그들은 우리의 전력망과 금융시스템, 정부시스템을 공격해 나라 전체를 실제로 마비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 아람코가 컴퓨터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사례 등 최근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사이버 공격이 이란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이란인 해커들의 소행이라는 인식이 미 당국자들 사이에 있다고 한 전직 미 정부 관리는 전했다.
WSJ도 이란 정부와 연계된 해커들이 작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미국 은행들과 카타르 가스업체 라스개스 등을 상대로도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고 미 안보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 등은 이러한 혐의를 적극 부인하면서 미국과 대립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지난 1일 중국발 미 언론 해킹 의혹에 대해 "이번 사건을 중국 정부나 군대와 연결하는 것은 황당무계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미국이 중국 봉쇄전략의 새로운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중국에 계속 `해커` 딱지를 붙이고 있다"며 "IP 주소만으로 해킹 공격의 출처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미국, 대응 박차…"유사시 선제공격도" = 이번 에너지부 해킹으로 사이버테러 피해 범위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미국이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NYT에 따르면 미 정부는 현재 마련 중인 최초의 사이버전(戰) 관련 수칙에서 대통령에게 사이버 선제공격 명령권을 부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당국은 비공개 법률 검토를 통해 국외로부터 중대한 사이버 공격 조짐이 감지되면 대통령이 사이버상의 선제공격을 명령할 권한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NYT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선전포고가 있기 전이라 해도 대통령이 승인한다면 적의 전산망에 악성코드를 심는 등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WP도 미 국방부가 산하 사이버사령부 규모를 현재의 5배 이상으로 확대하고 방어는 물론 적극적인 공격 전력(戰力)까지 포함하는 본격 사이버군(軍)으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또 발전소 등 전력망·상수도·금융 전산망과 같은 핵심 인프라의 사이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을 이달 중 발동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미 정부가 이처럼 총력 대응에 나서면서 국가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져 향후 중국 등의 대응이 주목된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