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서양 경험론 철학의 비조라고 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은 우상론을 설파하여 중세의 질곡이 잘못된 믿음이나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질타하였다. 동굴의 우상은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편견과 독단을 이름하고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질적 한계 때문에 갖게 되는 편견과 아집을 가리킨다. 근대 이후 이런 우상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당 부분 불식되거나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역사는 우상을 점진적으로 무너뜨려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그러나 역사 과정 속에서 새로운 우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미 있던 우상이 강화되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무지와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자각해서 그에 비롯한 우상을 빗겨간다 하더라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비롯한 아집과 편견, 독단에 빠지게 된다. 이를 베이컨은 시장의 우상이라고 하였다. 신이 존재하는 증거는 무엇인가.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과연 신이라는 말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이 시장의 우상의 사례라고 할 것이다. 우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막연한 권위에 의존해서 자신의 믿음과 독단을 강화시키려는 시도가 있다. 이를 베이컨은 극장의 우상이라고 하였다. 어떤 주장이 옳은 까닭은 그것이 특정한 권위자가 말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상은 지금부터 5세기 전에 살았던 베이컨이 말한 우상론을 풀어 본 것이다. 우리는 5세기 전 베이컨이 말하였던 이런 우상론에 비추어 과연 얼마나 진보하였는가. 지역주의가 좋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지역주의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무지의 동굴에서는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종족의 동굴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런데 종족의 동굴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또 다른 동굴로 빠져든다. 그것은 언어로 구성되는 동굴 즉 시장의 우상이다. 이런 예는 우리 사회에서 좌파나 좌익, 보수나 수구, 친북, 친미 등의 언어가 얼마나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권위에 의존하는 경향, 즉 극장의 우상에 이르면 과연 우리가 베이컨이 배격하고자 했던 우상에 얼마나 자유로운지 의문이 아니 들 수 없다. 소위 사회 원로란 사람들의 언행이나 유명인의 말이 우리의 당위나 현실에 대한 기준임을 강조하는 주장이 버젓이 우리 사회에 메아리치고 있다.현재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선택함에 있어서 우리는 적어도 베이컨식의 우상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많은 현상들이 처리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베이컨이 우려한 우상에 의해서 흐름이 정해지거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본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선택은 물론이고 국내의 많은 난제들이 베이컨이 우려해 마지않던 우상에 의해 휩쓸려가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우리가 할 일은 우상을 찾아 이를 파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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