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신일권기자]택시기사를 폭행하고 허위진술과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부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에게 1심 재판부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논란이 된 운전자 폭행 외에 증거인멸 교사 혐의까지 모두 유죄로 판단됐다.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부장판사 조승우·방윤섭·김현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차관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A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이 전 차관은 2020년 11월 자신을 하차시키기 위해 정차한 택시기사 B씨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차관은 B씨에게 폭행이 차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허위 진술과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교사했다는 혐의도 받았다.재판부는 이 전 차관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운전자 폭행이 (아닌) 단순 형법상 폭행(이 적용되도록) 불리한 증거를 은닉 또는 인멸해달라고 교사했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고 밝혔다.이 전 차관이 2020년 11월8일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과다하다고 볼 수 있는 금액을 B씨에게 송금한 것, 차에서 내려서 발생한 폭행이라고 진술해달라고 요청한 것 등을 유죄 판단 이유로 재판부는 제시했다.B씨도 영상 삭제 이유에 대해 이 전 차관이 부탁한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반복해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B씨의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고 봤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가정해도 교사가 범행의 유일한 조건이 아니라고 봤다.B씨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있는 영상을 `나에게서만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원본이 존재하는 이상 B씨의 행동이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지도 쟁점이 됐다. 이 전 차관 측은 영상이 언론에 배포되는 것을 걱정해 삭제를 부탁했다고 했다.재판부는 "동일성이 인정되는 증거는 원본과 동일한 지위를 가졌으므로 수사기관에 공개되는 것을 우려해 삭제한 이상 증거인멸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아울러 "이 전 차관은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까지 역임한 법률 전문가로서 순수한 부탁을 위한 행동이었다면 교사의 위험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충분히 강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재판부는 "이 전 차관은 택시기사를 폭행해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제3자의 위험을 유발할 수 있어 죄책이 가볍지 않다. 또 형사처벌을 피하거나 감경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교사하기도 해 죄질이 더욱 불량하다"고 지적했다.반면 부실수사 의혹을 받은 A씨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A씨가 이 전 차관에게 당초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가 아닌 일반 형법상 폭행을 적용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의도적인 것이 아닌)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이와 관련해서는 이 전 차관이 사건 발생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으로 거론되는 등 유력 법조인이어서 `봐주기` 수사를 한 것 아니었냐는 의혹도 있었다.이에 대해 재판부는 "상관이나 다른 기관에게서 영상 존재를 은폐하고 형법상 폭행으로 축소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아 업무를 했다는 증거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A씨의 `(블랙박스 영상은) 안 본 것으로 하겠다`는 발언도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A씨가 법리에 대해서 제대로 몰라 영상이 기존 판단을 바꿀 수 없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며 "부적절하지만 부작위만 분리해 특수직무유기가 성립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아울러 A씨의 결재 라인에 있던 상관들이 A씨의 실수를 바로잡아주지 못한 상황, 특히 상관 중에는 변호사 자격이 있는 경찰관도 있었던 점이 참작됐다.이 전 차관은 선고가 마친 뒤 항소 여부에 대해 "변호인과 상의하겠다"고 밝혔다.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한편 검찰은 지난달 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전 차관에게 징역 1년을, A씨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