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친구는 천주교 뒷길로 질러가자 하고나는 비석거리 큰길로 가자 했다결국은 따로따로 오다가둥구나무 앞에서 만나 웃었다나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서 갔지그런데 조금 더 커서는친구는 `근데`라고 말하고나는 꼭 `건데`라고 했다서로 맞다고 우겼다그런데 사실은 둘 다 `그런데`인데친구는 `러` 하나만 빼먹으려 하고나는 `ㅡ`, `ㄹ` 둘을 빼먹으려는 것빼먹는 것도 왜 달랐을까그런데한 줌도 안 되던 꼬마들 기싸움이 하나같을 때가 있었으니할머니가 소나무를 솔나무라 했을 때였다"소나무잖아" 하고 웃었다축약된 기억들이 빈 문장을 길게 짓고 있다몇 겹의 웃음이 그런데 하고는…를 찍는다생각해 보니 그날 나머지 공부는 맞춤법 공부였다<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사람 사는 일이 ‘맞춤법 공부’일 것 같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과의 관계란 서로 다른 부분들을 맞추어가는 과정이어서 글자의 ‘맞춤법 공부’와 다름 아니라는 생각. 하나하나의 철자를 덧붙이기도하고 삭제하기도 하면서 한 단어가 완성되듯이 사람의 삶도 서로 다른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과정일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표준에 맞춰 정확한 단어로의 완결이 삶의 표준을 찾아가 마치 ‘맞춤법 공부’와 다름 아니다라는 생각에 젖게 했다. 살다 보면 ‘축약된 기억들이 빈 문장을 길게 짓고 있다’ 는 시인의 생각처럼 기억을 소환하고 간혹 맞춤법이 틀린 단어들이 지나간 날들의 미숙했던 추억들인 양 웃음 짓게 한다. ‘한 줌도 안 되던 꼬마들 기 싸움’이 어른이 된 후도 이어졌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아마도 우정이 더 다져졌을 것이다. 묵은 기억이 정겨움으로 퇴적되어 그리움으로 변환됐을 테니까. ‘ 몇 겹의 웃음이 그런데 하고는 …를 찍는다’는 표현이 좀 좋은가 말이다.<박모니카>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 제보하기
[메일] jebo@ksmnews.co.kr
[카카오톡] 경상매일신문 채널 검색, 채널 추가
유튜브에서 경상매일방송 채널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