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청천동 콘크리트 건물 밖에는 플러그 뽑힌 채 장대비에 젖고 있는 도요타 미파 브라더싱가 미싱들이 있다 나오다 안 나오다 끝내 끊긴 황달 든 월급봉투들 무짠지와 미역냉국으로빈 봉지를 우적우적 채우고 있다얼어붙은 시래기 걸려 있는 담 끼고 굽이도는 골목 끝, 아득하고 고운 옛날 어진내라 불리던인천 갈산동 그 쪽방에는 연탄보다 번개탄을 더 많이 사는 어린 소녀가 살고 있다 야근 마치고 돌아오면 늘 먼저 잠들어 있는 연탄불과 활활 타오르기 전 곯아떨어지는 등 굽은 한뎃잠이 있다삼산동 논 가장자리에 앉혀진 그 붉은 벽돌집에는 아직도 비틀대는 깨진 유리창과 미친 칼을피해 옆방으로 도망친 늙은 아버지 피 묻은 런닝구와 선홍색 유리조각들이 장롱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배추밭에 배추나비 한가로이 노닐던 가정동 스레트 집 문간방에는 사흘 걸러 쥐어 터지던 젊은 해당화가 살고 있다 지금도 들리는 어린아이 울음소리 듣지 않으려 귀 막고 이불 속에 숨다 저도 몰래 뛰쳐나가 패대기쳐진 여인과 아이와 한 덩어리 된 어린 여자 눈물방울이 아직도 흙바닥에 뒹굴고 있을까//교도소가 마주 보이던 학익동 모퉁이 키 낮은 그 집 흙벽과 아궁이가 있던 옛 부엌에서는 전단지 속 휘어 갈긴 어린 해고자의 메모처럼 ‘배가 고파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호박 몇 쪽 둥둥 떠다니는 밀가루죽이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효성동 송현동 송림동 바람 몰아치던 주안 언덕빼기 그 작고 낮은 닭장 집 창문마다 한밤중이면 하나둘 새어 나오는 그 쓸쓸하고 따스한 불빛//이상하기도 하지 20년 동안 도망쳐왔는데 아직도 거기에 있다니내가 떠나온 그곳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나 대신 어린 내가 그 자리에 붙박혀 있다니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아직도 머리채 잡혀 끌려가는 내가 있다니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는데 뛰어도 제자리러닝머신 위에서 뜀박질이었다니숨고 싶어도 숨어 살아도 어진내, 수많은 나,산속까지 스며들어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니<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가난해서 애처롭고 편치않는 주변이 안타깝기만 한데… 구구절절 사연들이 슬퍼서 괴로울 법도 한데…왜일까. 이상도 하지. ‘어진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니… ‘그 쓸쓸하고 따스한 불빛’이 잊혀지지 않다니…‘스며들어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니’ ‘어진내’가 어쩌면 시인의 시가 솟아나는 샘물이었는지도 몰라. ‘어진내에 두고 온’ 시인이 있었기에, ‘어진내’ 의 가난과 슬픔과 외로움을 끌어안아 주었기에 말이다. 시에서 저토록 사람 냄새가 푸울풀 풍기는 것이겠지. 체온이 느껴지겠지.<박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