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 우리에게는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16세기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베이징의 여름은 타는 듯이 더웠고, 자금성에서의 정치 활동은 호방한 기마민족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북방의 몽골족은 호시탐탐 중국대륙을 노리고 있었다.
황실은 국방과 피서, 그리고 웰빙을 겸한 장소를 물색하게 되었고, 그 적임지로 청더를 택했다. 무엇보다 몽골 국경 근처라 몽골족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청더의 빛나는 영광도 퇴색된다. 중일전쟁 당시 청더에 난입한 일본군이 피서산장의60%를 파괴했고, 문화대혁명은 그나마 남아 있던 유적지들도 돌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뒤늦게 문화유산의 가치를 깨달은 중국 정부가 복원 작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절반도 손대지 못한 실정이다.
현재는 칭황다오의 베이다이허와 함께 베이징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름 휴양지이다. 빼어난 자연 경관은 물론 유적군전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역사적 가치도 높아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청더는 워낙 작은 도시인데다 버스 노선이 잘되어 있어 어지간한 볼거리는 모두 버스로 연결이 가능하다.
택시도 시내 곳곳에 보이는데, 요금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어 무척 편하다. 청더에서는 미터기를 사용하는 택시가 바가지 택시임을 알아야 한다.
청더의 가장 큰 볼거리는 피서산장과 거대한 티베트 불교 사원군인 외팔묘다.
피서산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하루가 다 소요될 정도고, 외팔묘 또한 8개나 되는 티베트 불교 사원군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루만에 다 돌기에는 해가 짧다.
▩볼거리
▲피서산장= 청나라 역대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 세계에서 가장 큰 왕실 정원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
실제로 피서산장의 넓이는 서울대공원의 3배에 달한다. 강희와 건륭 두 황제의 치세를 거치면서 87년간 조성된 피서산장은 오늘날 세계 곳곳의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테마파크의 원조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중국 각지의 명승지들을 모두 피서산장에 압축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항저우의 서호, 쑤저우의 전통 정원, 몽골의 대평원 등은 실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외팔묘= 피서산장 외곽에 위치한 8개의 티베트 불교 사원. 청 황실이 대대로 티베트 불교를 숭상한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만주족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정치철학은 중국 고유의 유교를 따르고, 종교적으로는 선종 대신 티베트 불교를 선택한 것은 절묘하다 할 수 있다.
또 청 황실의 든든한 후원으로 전 티베트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권을 확립한 달라이라마와 판첸 라마는 수시로 황제들과 연락을 취하며(심지어 두 라마가 청 황실에 대한 충성 경쟁까지 벌여가면서) 티베트 불교의 종교적인 권위를 확립하고자 했다.
황실과 티베트 불교 종단은 신도와 승려의 관계라기보다는 정치 거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황제의 여름 별궁에 티베트 불교 사원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래는 12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는 사원은 8개 뿐이다. 모두 1750~80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건축 양식이 모두 제각각이라 모르는 사람이 봐도 흥미가 있다.
▲경추봉= 해발 532m인 경추봉의 봉우리. 원래는 산 정상 바위의 이름이지만, 현재는 산 이름으로도 쓰인다.
높이는 불과 38m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채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라 무척 신기하다. 아슬아슬하게 서 있기 때문에 봉우리 가까이 가면 무너지지 않을까 겁이 난다.
하지만 앞으로 300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고 하니 안심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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