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부동산 중개업소 10%가 문을 닫았어요. 예전엔 절대 안 하던 물량 공유도 하게 됐고…."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8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씨는 요새 부동산 거래 동향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부동산 호황으로 포화 상태까지 달했던 서울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거래에 직격탄을 맞아 폐업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만 800여곳이 문을 닫았다.
이에 비해 법원 경매로 나오는 부동산은 밀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땅과 건물을 팔려는 사람들로 입찰법정에는 줄이 늘어섰지만 올해 미제사건만 2천800여건에 이른다.
◇한숨 쉬는 중개업자들 "장기매물 수두룩…거래량은 전무" = 10일 오전 영등포구의 한 상가 내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 1명만 출근해 상가 상인과 잡담을 나누고 있고 다른 책상은 텅 비었다.
중개업자 신모(43·여)씨는 "손님이 예전의 10분의 1로 줄었다. 부동산 운영하는 사람 중 폐업을 고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중개업자들은 한결같이 매물을 내놓는 사람들은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거래가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광진구에서 중개업을 하는 박상수씨는 13일 "2~3년 전에는 한달에 매매 1~2건은 성사시켰는데 올해는 작은 빌라 몇 건밖에 못했다"며 "1년 이상 안 팔린 장기매물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중랑구 면목동에서 중개업을 하는 최모(56·여)씨는 "이곳을 그만두려면 권리금을 고스란히 날려야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소장은 "강남 일대는 재건축이 걸린 곳이 많아 그것만 전문으로 하는 베테랑 중개업자가 많다보니 새 사업자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 올해 800곳↓…강북지역 감소세 뚜렷 = `우후죽순`처럼 늘던 서울시내 부동산 중개업소 숫자는 2008년 2만4천992곳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반전, 올해 9월 현재 2만2천605곳으로 4년새 2천387곳이 줄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9월까지만 작년(2만3천413곳)보다 808곳이 줄어 4년새 감소폭이 가장 컸다.
부동산 중개업소 수는 2008년 이후 2009년 2만4천671곳, 2010년 2만4천97곳, 2011년 2만3천413곳으로 매년 줄었다.
매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새로 문을 여는 중개업소 수를 감안하면 실제 문을 닫은 업소 수는 이보다 더 많은 셈이다.
서울시 남대현 토지관리과장은 "부동산 중개업은 개업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 너도나도 하다 보니 난립했던 게 사실"이라며 "경기가 최악이어서 부동산 거래건수가 없다 보니 영업활동은 안 되고 가게세만 낼 순 없어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한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강남 이외 지역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강서구가 2008년 1천269곳에서 1천21곳으로 248곳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고 은평구(210곳), 강북구(191곳), 양천구(162곳) 등도 크게 줄었다.
가장 적게 줄어든 자치구는 중구로, 2008년 563곳에서 올해 575곳으로 불과 12곳 줄었다. 종로구(13곳), 금천구(17곳), 영등포구(38곳)도 다른 자치구에 비해 감소폭이 작았다.
◇북적이는 법원 경매법정…미제사건 수북 = 탈출구가 안 보이는 경기상황은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제4별관 입찰법정에서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최근 입찰법정은 기일마다 경매 참여 희망자들로 가득 차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법원 경매를 통한 부동산 매각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그만큼 빚을 갚지 못해 땅이나 건물을 내놓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 말까지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민사집행 사건은 총 3천503건에 달했다.
이는 강제경매와 임의경매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천203건에 비해 10% 가까이 늘어났다.
월평균 접수건수도 임의경매의 경우 지난해 195건에서 올해 227건으로 15% 이상 급증했다.
부동산 경기둔화 양상은 65~70% 수준에서 큰 변동이 없는 낙찰가율(감정평가액 대비 매각대금)에서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집행과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감정평가액도 재작년부터 현실화하는 추세"라며 "그런데도 낙찰가율이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부동산이 헐값에 낙찰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아파트는 3차 입찰 정도에서 낙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상가는 8~9차까지 계속 유찰되기도 한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경매가 급증하면서 법원에서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하고 묵혀놓은 미제 사건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올해 10월 말까지 서울중앙지법 민사집행과에 쌓인 미제 사건은 총 2천83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2천668건보다 6% 가량 증가했다. 경매 참여관 한 명당 연간 미제 건수가 300건에 육박할 정도다.
법원행정처는 내년 1월 수원지법 등 일부 지방법원에 경매계를 2~3개 증설해 이 같은 변화에 대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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