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가입 17개국) 은행들의 부실이 재정 위기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유로존 은행연합(Banking Union)` 추진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유로존 은행을 직접 감독하는 단일 감독체제 마련을 골자로 하는 은행연합 구축안에 합의했다. 아울러 대략적인 추진 일정에도 합의해 올해 안으로 은행연합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4일 열리는 EU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은행연합 추진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요 외신과 EU 전문 매체들은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인 추진 일정이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EU 지도자들은 은행연합 구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은행감독 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해 적지 않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은행연합 추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가 큰 틀에는 합의했으나 유럽중앙은행(ECB)의 은행 감독 범위와 감독 체제 구축에 따른 유로안정화기구(ESM)의 자금 지원 시기를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유로존 은행 통합 감독체계가 마련되면 유로존 구제기금인 ESM이 회원국을 거치지 않고 회원국 은행에 직접 구제금융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은행 위기가 해당 국가의 부채 위기로 번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부실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탓에 부채가 쌓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은행연합의 가장 중요한 설립 목적인 ESM 직접 자금 지원에 대해 독일은 감독기구가 완전하게 구성되고 운영이 시작된 이후에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3일 ESM 구제금융을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거듭 밝혔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 10월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은행들에 대한 ECB의 감독권이 가동되기 전에는 유로존 은행들의 자본재확충을 위한 구제금융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프랑스는 내년 1월부터 단일 감독체계를 시행하자고 요구했고 독일은 금융계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대형 은행들만 대상으로 삼아 천천히 하자고 맞서 왔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에 대해 감독을 받기 꺼린 것이다.
유로존의 단일 은행 감독 체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유로화 가입 국가와 미가입 국가 간 차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스웨덴은 유로화 미가입 국가지만 유로화 가입국인 핀란드 은행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스웨덴은 ECB가 자신들 소유인 핀란드 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할 경우 자신들도 ECB 내에서 유로화 가입국과 동등한 대표권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폴란드, 헝가리 등 유로화 가입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들도 ECB의 감독권 행사로 자국에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EU 정상들의 은행연합 추진 합의에 따라 열리는 이번 재무장관회의에서는 ECB 단일 은행감독 체제의 출범 시기와 범위를 둘러싼 격론이 예상된다.
단일 감독 체계 창설은 은행연합의 첫 단계에 해당하며, EU는 이후 유로존 공동 예금자보호 체제와 부실 은행에 대한 워크아웃 및 청산 체제를 갖추는 등 은행연합을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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