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최영열기자]21세기 불가사의 중의 하나가 중동 산유국이 ‘탈(脫)석유 정책’을 펼치면서 자국 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들이 전기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에어컨 가동을 통해 황무지 같이 버려졌던 지역을 생활의 중심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탈핵’을 주장하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UAE) 국왕의 말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나의 할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여행했고, 아버지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했다. 나는 지금 비행기로 여행을 하고 있으나, 우리 아들은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하면 우리 손자들은 다시 낙타를 탈런지 모른다. 그래서 백년 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들 중동 국가들이며, 이들로 인해 주변국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 최대 규모인 대용량원자로(1천400만KW) 원전 4기 건설을 이미 끝냈다. 대용량 원전 1기는 연간 석탄 350만톤을 소모해서 만드는 분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에 사용되는 우라늄의 양은 석탄의 1/350만의 분량인 연간 1톤에 불과하다. 요르단은 한국이 개발한 연구용원자로를 수입, 이미 가동을 시작한 상태다. 이 밖의,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한 소형(스마트)원자로는 우리나라가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위해 개발한 원자로이며, 전기 생산(1/2)과 해수 담수화(1/2)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이렇듯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하게 3가지 유형의 원전(대용량원자로, 연구용원자로, 소형원자로)을 모두 수출할 수 있는 나라이며, 원전의 본 고장인 미국 승인까지 마쳐 미국 본토에까지 원전을 직접 건설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대한민국 원전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의해 수년 후면 원자력 연구 기반까지 무너질 지경에 다다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원전 과학자들이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처로 생계를 위한 취업 전선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원자력이 무너지면 가장 좋아할 나라는 북한과 중국이다. 북한은 대한민국이 핵무장할 기반을 잃어버리기에 기뻐하고, 중국은 해외 원전 수출 시장의 강력한 경쟁국인 한국을 넘어설 수 있기에 반길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정도로 가장 존중을 받는 과학자가 ‘원자력 전문가’인데 반해,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과학자가 ‘원자력 전문가’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원전 과학자들은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을 가진 대한민국이 미래 100년 먹거리이며, 국가안보를 위한 첨단 과학기술을 정부 주도로 폐기에 나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며 “전 세계가 심화되는 환경파괴 문제와 에너지 부족 사태를 맞고 있는 가운데 탈원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탈원전 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국내 원전 관련 대학과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 폐과(廢科) 사태까지 염려해야 할 상황이 됐다. ◇ 원자력의 국내 최초 도입과 배경 국내에서 원자력 관련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가 남기고 간 소규모 화력발전소로는 이 나라 발전을 이끌 전기 공급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1956년 7월 미국 전력계 거물인 워커 시슬러(1897~1994) 박사를 초청했다. 그는 전후 유럽의 전력망 복구 작업을 지휘한 전문가로, 후일 미국차관을 얻어 한국 내 화력발전소 확장을 이끈 인물이다. 그가 1957년 7월8일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원전의 효율을 설명하며, 장기적 측면에서 전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구체적 추진 방안으로 첫째, 정부 내에 원자력 전담 부처를 설치할 것. 둘째, 원자력연구소를 신설해 연구를 진행할 것. 셋째, 원자력을 공부할 50명의 과학자 선발해 선진국으로 유학 보낼 것 등이다. 국내 최초의 원자로 기공식이 진행되던 1959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라며 국내 원자력 육성을 독려했다. 원자력발전소 출범 시기를 묻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워크 시슬러는 20년 후를 예상했고, 이로부터 정확하게 20년 후인 1977년 이 땅의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1호기가 준공돼 전기 생산에 들어갔다.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을 중심으로 한 야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방해와 함께 원전 건설과 관련한 강력한 반발도 계속됐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착공(1971년) 7년 만에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완공, 대한민국의 원자력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고리원자력 발전소의 건설비용은 총공사비 1천428억원에 이르렀지만, 가동한지 4년 만에 초기 투자비를 상회하는 전력을 생산했다. 당시 1천400억원의 가치는 경부고속도로(430억원)를 4~5개 건설할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었다. 이렇듯, 대한민국 원전은 친환경적 발전을 통해 국민에게 값싼 전기를 대량 공급해 줌은 물론, 대한민국 산업화의 든든한 에너지원으로 경제 기적을 일군 산업화의 상징이다. 이후 박 대통령은 캐나다로부터 천연 우라늄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가압 중수로형 월성원전을 1975년 도입, 전력생산은 물론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월성원전은 긴박한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 속에 북한 등 주변국의 핵무기에 맞설 전력을 확보하고자하는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원전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써의 기반을 다지는 것은 물론 안보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 폐쇄안전성 문제를 빌미로 한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계획이 실패하자 정부는 산자부를 압박해 경제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 산자부의 압력에 의해 경제성은 2차례 조작됐고 이를 근거로 월성1호기 폐쇄를 앞당겨 실시하게 됐다. 여야의 합의에 따라 국회가 감사원 감사 청구에 나섰지만 청와대와 산자부는 이에 아랑곳 않고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압박해 2019년 12월24일 영구정지 최종 결정(조기폐쇄)을 내린다. 감사 결과도 나오기 전이다. 이후, 지난해 10월20일 최재형 감사원장을 통해 수천쪽 분량의 감사 결과 공개와 함께 산자부의 조직적 방해·비리가 폭로됐다. 산자부 공무원들이 500여 건의 공문서를 감사원 감사 직전 파기했으며, 복구된 문서 가운데는 ‘북한 원전 건설 계획’이 드러나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 대전지검이 월성1호기 관련 수사를 맡아 진행 중이며, 공문서 파기를 주도한 산자부 공무원과 관련자 3명이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 정부의 제9차 전력 수급계획 발표(원전 축소와 전기료 인상, 탄소배출량 증가)정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제9차 전력 수급계획은 신한울 3,4호기를 전력 공급원에서 배제하는 등 총 24기인 원전을 17기로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설비 용량을 약 4배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이는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려 원전을 확대하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추세와 상반된 에너지 정책으로, 막대한 혈세 낭비와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서민 부담 증가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6%대에 머물고 있는 원전 비중을 10년 이내에 22%까지 올리기로 했고,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차세대 원전 지원을 공약했다. 그러나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이뤄내겠다면서 원전사업 확대를 반대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LNG 발전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LNG는 원전의 50배 가량의 탄소를 발생시키는데다가, 발전단가도 3.5배 비싸 전기료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7천900억원이 투입된 신한울 3,4호기는 제9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제외됨에 따라 다음달 말부터 폐기 수순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두산중공업의 제소로 수천억원의 피해보상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이 탈원전이라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의 고수로 빚어진 사태 중의 하나다. ◇ 대한민국 에너지정책 전망과 대책선진국만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인 원자력은 대한민국 원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산업화의 초석이며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잘 지키고 보전해야할 국기 기간산업이다. 이렇듯 60여 년 동안 이 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원자력이 현 정부의 지난 4년간의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책 추진 과정에 있어서도 대만처럼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물은 적이 없다. 또한 정부는 원전 전문가들의 분명한 ‘탈원전 반대 의사’는 물론 80여 만명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철저히 묵살했다. 국민의 41% 지지만을 받은 정권이 수많은 전문가들과 국민의 지속적인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한민국 에너지 자급화율 향상과 탄소제로 시대를 앞당기려면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수급 정책은 응당히 철회되어야 한다. 더불어 백지화된 대진1,2호기(강원도 삼척)와 천지 1,2호기(영덕)에 대한 사업 재추진은 물론, 공사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재개되어야 한다. 또한, 월성원전 1호기와 관련된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물론 수명 연장을 재검토해 재가동이 이뤄지도록 추진해야 한다. 대한민국 원전 상황을 두고 한 원자력 전문가는 “5천년을 배고프게 살아온 우리민족이 최근 50년 동안 배고픔을 잊고 살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며, “이렇듯 선배들이 대한민국에 물려 준 위대한 유산인 산업화와 100년 먹거리 원전을 잘 개발하고 발전시켜 후대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