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동백 작가ㆍ사진=강병두 작가]
연재를 시작하며
물은 강을 이루고 흐르면서 인간의 삶을 직접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간섭한다. 따라서 인간은 물의 그릇인 강에 기대어 살아온 것이다. 곧 인간은 강에 의지하여 생존해 왔고, 그러는 동안 역사를 이루고 문화를 형성하였다. 여기에 강의 중요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낙동강의 생태와 경관, 그리고 이 강섶에서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연재물을 기획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이번 연재는 안동 권역 낙동강에 한정함을 밝혀둔다. 낙동강은 강원도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521.5㎞를 흘러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영남의 젖줄이다. 안동 권역에 속하는 낙동강은 도산면 가송리에서 북에서 남으로 곡류하다가 안동댐을 지나 반변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풍천면 구담리까지 흘러간다. 그 물길은 도산면, 예안면, 녹전면, 와룡면, 안동 시내, 서후면, 풍산읍, 풍천면을 관통하면서 토계천, 동계천, 구계천, 반변천, 송야천 등을 받아들이며, 도상圖上으로 대략 97.4㎞를 이어 간다. 강의 주요 시설로 1976년에 준공한 안동댐이 있고, 중앙선이 지나가는 안동철교와 중앙고속도로에 지나가는 서안동대교를 비롯하여 24개 다리가 있다. 이들 다리에는 목책교인 월영교와 두 개의 잠수교도 포함된다. 이 안동 권역의 낙동강은 편마암과 중생층中生層 사이의 구조선을 따라 유로流路를 취하는 천정천天井川으로 청량산을 지나 예던길 아래로 흘러내린다. 강의 상류는 가송협, 단사협 등의 협곡을 따라 사행하다가 원촌과 부포에 이르러서는 그 품에 꽤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도산면 원천리가 만수 지역에 들어감으로써 이 범람원은 수몰되고 말았다. 유역에 형성된 주요 평야로는 안동분지와 충적평야를 이루는 풍산평야가 있다. 그리고 낙동강 상류에는 산협을 끼고 휘돌아 흐르는 감입곡류嵌入曲流가 산재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하회마을이다. 이러한 지형상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안동 권역의 낙동강은 아름다운 경관으로 그 이름이 높다. 일찍이 퇴계 이황이 오천에서 청량산에 이르는 아홉 곳의 경치를 읊은 「陶山九曲」을 보더라도 고산정, 단사협, 갈선대 등 이 일대가 승경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도산서원 주변의 경관도 범상치 않다.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앞으로 내다보는 경치, 부용대에서 안존하게 내려다보이는 하회마을의 경치 역시 인상적이다. 그리고 안동댐과 월영교, 임청각, 영호루는 배우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테마 기행지로 적합할 것이다. 낙동강 상류의 생태계는 안동댐 건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댐 주변의 수몰 지역에는 백로, 왜가리, 고니, 청둥오리들이 서식한다. 안동댐 모래섬에는 2013년부터 바닷새의 일종인 쇠제비갈매기가 날아와 깃을 접었다. 낙동강 최상류인 태백에서 안동까지의 지류와 본류에 사는 토착어종은 칼납자루, 참몰개, 쉬리, 긴몰개, 돌마자, 꺽지, 수수미꾸리 등 11종에 이르고, 여기에 외래어종인 블루길이나 배스 등이 더불어 살고 있다. 문제는 댐 건설 후에 들어온 이들 외래어종 때문에 토착어종이 많이 감소하는 일이다. 안동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은어가 바다에서 많이 올라왔으나, 물길 막히면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댐 안에서 일생을 마치는 육봉은어가 안동호에 서식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낙동강 상류에는 홍수에 의한 파괴와 토양 특성의 영향으로 여뀌, 쇠뜨기 등이 산재한다. 홍수가 적은 해나 갈수기에는 일년생 초본류가 일시적으로 번성하기도 한다. 댐 건설로 하류에 습지가 새로 생겨난 곳이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구담 습지와 검암 습지이다. 습지에는 버드나무, 갈대 등의 식물과 고라니, 수달 등의 동물이 서식한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안동호에는 여름이면 녹조류가 댐 상류를 뒤덮는 일이 잦다. 그리고 상류에서 유입되는 중금속으로 호수의 오염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류는 일찍부터 강에 의지하여 살면서 문명을 일으켜 왔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낙동강도 예외가 아니다. 안동에서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은 출토된 유적, 유물로 봐서는 적어도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 시대부터 낙동강 강가에 움집을 짓고, 주먹도끼, 찍개, 몸돌 등을 사용하며 살았다. 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 마애선사유적이다. 선사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넘어오면서 낙동강이 안동을 한반도 역사와 문화의 한 거점으로 만들었다. 삼한 시대에 이미 창녕국이란 부족 국가를 세웠으며, 신라 시대에는 고타야군이 되었다가 고창군으로 개칭하였다. 안동은 고려 시대에 이르러 고려 건국의 결정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크게 흥하여 대도호부에까지 이르렀다. 조선 시대로 들어와서는 퇴계 이황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나옴으로써 영남 학맥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오늘날, 안동은 유교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며,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 쉬는 고장으로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의 지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안동에서 배출된 인물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우선 우뚝하게 나서는 인물들이 고려의 개국공신 성주 김선평, 권행, 장길 등 삼태사이다. 김방경 장군과 역동 우탁도 고려가 낳은 안동의 인물이다.임청각 군자정 조선 시대에는 ‘조선 인물의 반은 영남에서 났고, 영남 인물의 반은 안동에서 났다.’라고 하여 ‘인다人多 안동’으로 불렸다. 낙동강 강섶에서 태어난 인재들에 국한해서 그 대강을 살펴보자. 어부사를 통해 강호가도를 형성한 농암 이현보는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이었다. 동방의 주자로 일컬어지는 퇴계 이황은 성리학으로 퇴계학을 정립하여 퇴계 학맥의 조종祖宗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문하로 우뚝 솟은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월천 조목, 성성재 금난수, 오천 군자리의 칠 군자, 유일재 김언기 등이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학문과 더불어 살펴봐야 하는 것은 문학이다. 우탁은 고려 시대 문인으로 ‘탄로가’, ‘백발가’를 남겨 시조문학의 장을 열었다. 그 뒤를 이어 농암 이현보가 ‘어부사’를 지어 강호가도를 창시하면서 ‘귀거래사’, ‘농암가’, ‘효빈가’를 남겼으며, 그 어머니 권씨 부인은 ‘선반가’를 지었다. 그의 아들 이숙량도 ‘분천강호가’를 남겼다.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을 지어 자연에 동화된 삶과 학문에의 정진을 읊었다. 한편 안동에는 많은 내방가사가 전해지고 있거니와, 이 내방가사는 당시 여인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이 있다. 그는 독립투쟁에 일생을 바치는 한편 시로써 일제에 항거하며 광복을 예언한 행동하는 시인이었다. 일제의 침탈로 국권을 빼앗기자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안동 권역 낙동강을 낀 마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동의 임청각, 도산의 하계, 예안의 부포, 풍천의 가일과 오미가 그 대표적인 곳이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임청각 주인 석주 이상룡, 하계의 향산 이만도, 부포의 이동하와 이선호, 가일의 권오설, 오미의 김재봉과 김지섭이 이들 마을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들이다. 한편 일제에 저항하다가 북경 감옥에서 순국한 원촌의 육사 이원록이 있다. 그리고 안동 장터, 예안 장터, 풍산 장터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도 독립 운동사에 남을 큰 사건이었다. 오랜 세월 낙동강은 사람들에게 터를 내주어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했다. 작은 터에는 작은 마을을 허락했고, 넓은 터에는 큰 마을을 이루어 물산의 집산을 도왔다. 일테면 안동, 풍산, 수몰 전의 예안과 같은 큰 마을에는 장시를 열게 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는 가운데 마을의 문화, 시장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하회 탈춤 낙동강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육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낙동강 수로는 예안 석빙고에까지 닿았다. 그리고 육로가 닿은 강가에는 나루터가 형성되었고, 그 곁에다는 적어도 주막 하나쯤을 마련해 두었다. 부포 나루, 주진 나루, 개목 나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강기슭에는 강학을 위해 서원이 문을 열고, 시인 묵객들이 강호 한정을 읊고 호연하게 풍류‧교유하던 누각과 정자가 있다. 도산서원, 분강서원. 임천서원, 병산서원, 화천서원이 그 강학의 공간이었고, 고산정, 군자정, 귀래정, 영호루, 낙암정, 만대루, 파산정이 그 시회와 풍류의 공간이었다. 한편 강마을을 중심으로 전통 민속 문화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안동 권역의 낙동강에서 일어난 전통 민속 문화로 대표적인 것은 하회별신굿탈놀이와 하회선유줄불놀이일 것이다. 이 밖에도 병산탈춤이 있고, 세력이 크다 싶은 마을에서는 대동굿을 열었다. 어쨌거나 안동 권역의 낙동강은 그 강섶에다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셋을 우뚝하게 세워 놓은 뒤, 영남의 한복판을 우렁우렁 가로질러 대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강은 자연의 운용에 따라 넘치기도 하고, 비기도 한다. 강이 지나치게 넘치고 빌 때, 그 강에다 목숨을 의탁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그래서 강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서원誓願하고, 때로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낙동강으로 나가서 맑은 물을 길어 정화수로 쓰기도 했다. 물은 이처럼 정화수로 쓰이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낙동강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