屈原(굴원, BC 343?∼BC 278?)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이다. 이름은 平(평)이고, 자는 原(원)이며 揚子江(양쯔강) 중부 유역의 초나라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초나라 회왕의 신임을 받아 20대에 벌써 左徒(좌도)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법령 입안 때 궁정의 정적인 상관대부와 충돌해 그의 중상모략으로 면직당하고 국왕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굴원은 齊(제)와 동맹해 강국인 秦(진)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진의 장의와 내통하고 있던 정적과 왕의 애첩의 참소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왕은 제와 단교했으나 결국 진에게 기만당하고 진의 포로가 되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회왕이 죽은 뒤 큰아들인 頃襄王(경양왕)이 즉위하고 막내인 子蘭(자란)이 令尹(영윤; 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漁父辭(어부사)’는 그때 쓴 작품이다. 굴원이 추방을 당하고 나서 동정호 근처에서 시를 읊조리며 방황하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보여서 어부가 그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은 三閭大夫(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이런 이유로 쫓겨나게 되었다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시이견방) 어부가 말했다.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어찌 그 진흙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어째서 그 술지게미를 먹고 찌꺼기 술을 마시지 않으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습니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맑고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어부는 빙그레 웃더니 뱃전을 두드리고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하고 어부는 마침내 떠나가고 굴원은 다시 그와 대화하지 못하였다. ‘굴원의 고사’에서 은둔지사 어부는 굴원에게 세상의 변화에 따라 더불어 살아 갈 것을 권한다. 이에 굴원은 혼탁한 사회 환경을 함께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결백과 청렴을 고집하고 있다. 인생은 부단한 선택과 외로운 결단의 연속이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위의 고사는 인생의 교훈과 심오한 지혜를 일깨워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이 될까? ‘굴원의 고사’에서 굴원과 어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 굴원의 고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부패를 막고 정의를 높게 세우려는 ‘굴원의 사상?’과 서로 공존하고 조화로운 삶을 향유하려는 ‘어부의 사상?’이 相反(상반)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두 사상이 인간의 내면에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멋진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아울러 정직하고 청렴하게 살면서 법과 규정의 한도 내에서 여유와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최고의 삶이며 ‘中庸(중용)’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