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 이 가을도 어느덧 겨울의 길목에서 안녕을 고하고 있다. 굳이 깊은 산에 가지 않아도 시내 자투리 공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낙옆이다. 도로 옆 팔 벌려 서있는 가로수들 조차 화청소 붉고 노랗게 물들어 바쁜 시선 끌어드리며 맑은 하늘까지 덤으로 눈 시리게 한다. 윤기나는 푸르름으로 몸을 불리던 들판의 잎들이 엽록소葉綠素 의 쇠락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꽃보다 아름다운 색으로 몸을 바꾼다. 그 밝고 투명한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감탄하거나 발밑에 낙엽이 뒹굴면 까닭모를 비애에 휩싸여 겨드랑이가 스멀거린다고 움츠린다.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왠지 허전해지고 스산해져서 지난 것들을 애써?더듬거나 추억을 찾아내 사색에 잠기게 된다. 대중 속에서의 고독, 외롭지 않은 사람 누구이며 그리움 한 조각 빈 가슴 어디께 쯤 간직하지 않은자 누구이겠는가! 마음이 텅빈 공명 속에선 악기 소리가 난다. 자리를 넓힐 수록 음색은 높아져서 흔적은 깊어지기에 바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동물에겐 생존의 환경인 자연을,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자연의 풍경에서 찾아내 사물에 언어의 옷을 입혀 노래하기도 하고 시를 읊기도 한다. 가을이면 의례히 구르몽의 시 <낙엽>이 생각난다. “시몬,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는가” . 젊은 날에 느꼈던 낭만이 아니라 낙엽처럼 짓밟히고 사라져 없어질 우리의 느낌을 아쉬워하였으리라. 또 귀에 익은 프랑스 샹송 오텀리브스가 라듸오에서 연상 마음을 슴슴하게 하고 잊혀진 첫사랑을 생각나게도 한다. 그 코 맹맹하고 바람빠지느듯 한 샹송 가수의 매력적인 저음이 가슴 산란하게 했었다. 또한 인제에서 태어나 요절한 시인 모더니티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이 입속에서 자꾸 맴돈다.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이 흙이 되어 우리들 사랑이..., 내 서늘한 가슴에 남아있네”. 그때가 꼭 이맘쯤이었을 것이다. 사라진다는 것, 태우고 태워서 흙이 된다는 것, 서러움이, 사색이, 곰삭아 현재의 빈자리를 채운다. 기막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씨는 어느 칼럼에서 이 가을 통속할 것인가, 외로울 것인가,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갈건가, 묻고 있다. 그가 던지는 실존의 질문을 우리들은 무엇으로 답 할 것인가, 외로울 땐 충분히 외로워하고, 보낼 땐 아름답게 보낼 줄도 아는, 현실을 뛰어 넘는, 훗날 돌아보면 그 또한 아름다웠노라는 한마디쯤은 내 가슴 어느 구석쯤에 저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투명한 마음을 만날 날을 위하여. 세월의 무게가 버겁다 여겨지는 이 가을엔 유치하거나 허전함을 메꿀 수 있는 모국어로 시 한수씩 남겨두시지 않으시려는지.가을엔 유치해져야?제격이다. 그리움이 동행하는 길엔 스산한 바람이 함께하는 이 계절 시간의 환승역과 같은 11월에 아듀를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