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매일신문=박동수기자] 나는 안동지역에서 고령의 국가유공자와 유족 어르신 댁을 방문해 재가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훈섬김이’로 4년차 근무하고 있다. 2015년부터 인연이 맺어진 6·25참전유공자 어르신과의 안타까운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이 어르신은 8년 전 할머니와 사별하고 자식들은 모두 타지에 있어 홀로 사시며 주변사람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점잖은 분이시다. 나는 어르신 집을 주 1회 방문하여 가사 일을 도와드리고 건강 체크와 말벗을 해드린다. 어르신은 뇌출혈의 병력이 있고 약간의 치매증상도 있으신데, 한 번은 방문했을 때 욕실에서 혼자 넘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으신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병원에 모시고 간 적이 있어 더 마음이 쓰이던 어르신이었다. 올 해 2월 어느 저녁, 대구에 있는 어르신의 딸에게 “아버지가 안동의료원에 계시는데 나는 갈 수가 없으니 대신 가서 입원 좀 시켜 달라”고 연락이 왔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지쳐있었지만 늦은 시간 혼자 병원에 계신 어르신을 생각하니 안 갈 수가 없어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남편에게 동행을 부탁해 병원에 함께 갔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어르신은 텅 빈 병원 대기실 의자에 누워계셨는데, 우산과 드시다 만 빵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가 옆에 놓여 있었고 몸에서는 악취가 심하게 나고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아침녘 어지럼증으로 넘어져 혼자 있는 것이 겁이 나서 병원에 왔는데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고 해 딸에게 연락하고 여태껏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빵으로 허기를 때우고 하루 종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계셨을 어르신을 뵈니 불쌍하고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병원에 입원을 요청하니 뇌출혈과 치매증상이 있어 간병사나 보호자가 반드시 옆에 있어야만 입원을 허락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딸에게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본인은 갈 수 없는 형편이니 나더러 간호해 달라기에, 늦은 저녁이고 다음날 출근해야 돼서 어렵겠다고 하니 그럼 그냥 가라고 하였다. 어르신은 우리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대기실에서 자면 되니 걱정 말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옆에서 보다 못 한 남편이 통화하여 “우리 아버지도 참전용사셨는데 아픈 어르신을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오늘 밤에는 돌봐 드릴테니 내일아침 8시 전까지 꼭 와 달라”고 당부하고 어르신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입원하였다고 전화를 하니 다음날 오후까지 오겠다며 말이 달라졌다. 지금 쉬는 중이신 걸로 아는데 일찍 내려오셔서 어르신 상황을 보고 가족이 알아서 하시라고 하고 전화를 마쳤다. 이후 자정이 지나서 딸이 왔고 어르신을 인계해 드렸다.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방문하여 돌봐드리는 것이 보훈섬김이의 본분이지만 이렇게 부모를 무작정 보훈섬김이에게만 맡겨버리고 자식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을 겪을 때면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도 시댁과 친정 어른이 있어 자식의 입장을 알지만, 자식들이 우선 부모님에 대한 보살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훈섬김이에 대해서는 자신이 모시기 힘든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 보살펴 주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며, 상대를 좀 더 배려하면서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보훈섬김이로 고령의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을 방문하여 돌봐드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르신들에게 많이 배우고 따뜻한 인연을 맺으며 보람도 많이 느낀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 알 수는 없지만 보훈섬김이로 일하는 동안은 젊은 시절 나라를 지키신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돌봐드리리라 다짐해 본다.                                                                               경북북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황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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