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먹고 산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하도 많이 먹어 이제는 그 맛을 못 느낄 만도 하지만 불안과 고통의 맛은 늘 새롭다. 한날한시에 난 손가락도 길이가 다 다른데 이 사람 저 사람의 인생이야 얼마나 다르겠나. 그러니 그 불안과 고통이 늘 새로울 수밖에.질병이란 감당할 수 없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잠시 글자 공부를 하고 넘어 가겠다. 질(疾)이란 글자를 곰곰이 쳐다보면 녁(疒)과 시(矢)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녁(疒)은 병상에 누운 아픈 사람이다. 녁(疒)이 부수인 자는 질병과 관계 있다. 시(矢)는 쏜살이다. 화살에 맞았는데 늦장을 부리면 되겠나. 얼른얼른 치료해야지. 그러니 급성병이라는 뜻도 있고 빠르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병(病)은 이와는 다르다. 병세가 심해 격리해서 치료해야 할 환자라는 뜻이니 중병을 말한다.이러저러한 증상의 질병이 생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극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 보통 푹 쉬면 좋아져서 없어지는 증상을 질병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여기서 푹 쉰다고 할 때는 잠을 말한다. 인간이 매일 취하는 휴식 중 가장 중요한 휴식이 잠이다. 잠을 잤는데도 풀리지 않는 피로 이건 병이다.과로에서 벗어나 적당한 휴식을 취했는데도 낫지 않는다는 것은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자극으로 상처가 심하게 났다는 말이다. 여기서 몸은 마음을 포함한다.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극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극을 차단해야 몸을 더 이상 손상되지 않게 할 수 있다. 폭탄 계속 떨어지는데 복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나. 내가 하는 일은 자극을 차단한 다음 복구하는 일이다. 무엇을 차단하라는 말은 해줄 수 있지만 막아줄 수는 없다. 왜냐면 자극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거나 외부에서 온다. 다 당사자가 해결할 문제다.자극이 단순하게 물리적이라면 차단하기가 좀 쉽다.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거니까 마음 좀 독하게 먹으면 된다. 문제는 감정을 거스르는 자극이다. 주로 인간관계에서 오는데 이게 차단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천신만고 끝에 차단했다고 치더라도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터이다. 상처가 얕아 기능 정도만 흔들렸더라면 어찌 해볼 수도 있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파괴가 일어났을 때는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건강하길 원하는가? 아니 그보다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몸을 원하는가? 그러면 나를 끊임없이 찔러대는 자극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아라. 병의 원인을 찾지 않고 우선 급한 마음에 결과만을 지우길 원한다면 점점 건강에서 멀어질 뿐이다.과음으로 병이 왔다. 이 병의 일차적인 자극원은 지나친 음주다. 술을 끊어야 한다. 간단하다.정말?병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게 된 데는 무슨 사연이 있지 않을까? 잦은 접대로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단다.이러면 곤란한데.술을 끊자니 직장에서 밀려날 것 같고 계속 마시자니 몸이 죽어나고. 진퇴양난이다. 직장도 지키고 몸도 지키려면 접대문화의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성공했을 때 혁신이지 실패하면 쪽박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인간의 손실 회피 경향 때문이다.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자극의 뿌리는 이렇게도 깊으며 덩굴은 한없이 얽혀 있다. 이러한 자극이 자아내는 불안과 고통이란 당연히 익숙해질 수 없다. 긴장으로 늘 병을 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