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는 그 나라의 상징이자 정신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전국을 뒤덮은 태극기 물결은 우리 국민의 단결된 힘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더욱 알리는 국위선양도 했다고 본다. 예고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출정식 태극기 앞에서 초연하게 사진을 찍은 독립운동가 윤봉길, 이봉창의 모습은 볼 때마다 시리고 멍한 충격과 함께 그들의 애국혼에 다시금 머리를 숙이게도 한다. 기자의 집 문에는 연중 조그만 태극기가 걸려 있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태극기를 보고 가끔 미소 지을 때도 있다. 그냥 반가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달기 시작한 이유는 별다른 애국도 못 하는데 깃발이라도 달아 놓고 가끔이라도 나라를 기려보자는 생각이지만 만약 전쟁이라도 난다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는 접어 두고 주저 없이 전선으로 나가겠다. 총이 모자란다면 병사 옆에서 탄창이라도 수북하게 들도록 허락해다오. 물론 그런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도록 이 나라를 이끄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항상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가끔 불안할 때도 있다. 머나먼 서울에서는 겨울 오는 광화문에서 봄 찾아온 서울구치소 앞까지 태극기가 분노에 찬 듯이 포효하고 있다. 그 누구를 위한 행진이고 그 무엇을 위한 분노인지 씁쓸하다. 왜 우리 정치인들은 애꿎은 국민을 죽자살자고 편을 갈라서 분노의 집단으로 몰아가는지. 이제 촛불이나 태극기나 다들 우국충절은 확인됐으니 그만했으면 좋겠다. 지금 나라와 국민이 각종 우환으로 너무 힘들지 않은가. 잘들 추슬러 놓고 넉넉하고 한가할 때 다들 즐거이 해도 되지 않는지. 태극기가 분노나 좌절이 아닌 자랑스럽고 즐거운 일에 휘 나부꼈으면 좋겠다. 연간 십만 명 이상이 오가는 독도 부두에는 태극기가 없다. 울릉도에서도 87km의 바다를 건너 독도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400여 평의 좁은 공간인 부두에서 20여 분 머무르다 다시 배를 타고 울릉도로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이외의 지역은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를 찾는 이들은 산 건너 물 건너고 바다까지 건너고 또 건너온 애국 국민이다. 머나먼 이 땅을 찾아온 우리 국민을 위해 부두에 게양대 하나 세우자.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이라도 한번 찍게 하자.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힘든 걸음으로 국토의 막내를 찾은 애틋한 국민을 태극기가 먼저 반기게 하자. 설마라도 독도에 시설물 설치를 무섭도록 엄격하게 막고 있는 문화재청이 반대할 일이야 있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