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정성수김 매주고 피 뽑아 주니한 됫박쌀이 되더라안쳐 주고 불 때 주니한 그릇밥이 되더라그 밥오래 오래 씹을수록피가 되고살이 되더라
시의 산책로 고된 노동으로 농사지어 그 결과로 수확을 하게 된다. 그 수확물로 정성을 다해 밥을 지어먹는다. 이 시는 온몸으로 씨 뿌리고 가꾸며 거둔 만큼 눈물겨이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파종과 보살핌, 수확, 섭취의 과정을 바탕으로 씨앗, 쌀, 밥이라는 연속성을 부드럽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안정적인 화법 속에 의미의 단락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수사상(修辭上) 연쇄법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의미상의 인과관계만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읽는 이들이 호흡하기에 편안할 만큼 시의 구조가 단조롭고 간결하며, 이와 동시에 언어의 절제미와 정갈함이 돋보인다. 농사짓는 일이나 밥 짓는 일이나 다 평범한 일상사이지만 그 의미만은 물맛 좋은 우물물처럼 깊이가 있다. 시의 저자는 우리 문단의 원로로서, 시문학계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독자들이 놀랄 만큼 간결한 시를 발표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지막 연의 ‘그 밥/ 오래 오래 씹을수록/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에 우리네의 삶이 다 녹아들어 있다. 역으로, 우리의 육신이 존재하기까지는 한 그릇의 밥이, 한 됫박 쌀이, 그리고 한때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이 시가 지니는 또 하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