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破墓)> 하수현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하는 그 길을 가며 그대 이미 종언(終焉)을 고하였네 더 이상 잃을 것도 두려움도 없는데새 자리에서 다시금 고운 흙 덮고 빗돌을 세워 질기도록 기념해야 할 그 무엇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 백골이 무얼 묵시(黙示)하는지 스스로 안다면 그대 육신은 지금 다 흩어져도 좋으리 이제는 어떤 변명도 항의도 할 수 없는데 솔뿌리마저 두개골을 뚫고 들어온 일은 남은 육신도 조속히 허물어 대지(大地)로 귀환하라는 저 우주로부터의 사령장(辭令狀),생전에 자신의 것을 던져버리지 못한 일이야말로 결국 그대의 부질없는 후회로 남으려는가 입을 닫은 그대여, 알고 있는가이제 모든 권한은 남은 자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시의 산책로 무덤을 파내는 일이란 보통 일이 아니다. 이장(移葬)을 하기 위해, 혹은 묘를 그 자리에 새로 단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행하는 일이다. 사자(死者)의 주변인들이 부패된 시신, 특히 유해(遺骸)와 맞닥뜨려야 하고, 사자의 죽음과 관련된 당시의 기억과도 만나야 하는 일을 예사로 여길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시(詩)는 사자의 육신에 관한 변(辨)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어야 하므로, 사자는 사후에도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 능동적 자아실현을 할 순 없다. 결국 사자의 위상과 이미지 형성에 큰 변수가 되는 사람은 유족을 포함한 그 주변인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파묘의 경우에도 사자의 유해 처리와 관련된 결정권은 그들이 갖는다. 다만 사자가 흙으로 돌아가듯이 그들 또한 그 길을 가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남은 육신도 조속히 허물어 대지(大地)로 귀환하라는/ 저 우주로부터의 사령장(辭令狀),’에 시의 방점(傍點)이 찍혀 있다. 인간의 죽음을 통해 삶의 허무에 대해서도 미리 배워두자는, 이 시 화자(話者)의 변(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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