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 이원상 희미한 가로등이 장승인양 버티고 선 복개천 사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의 요령소리가 은은히 울린다아무 소용없는 싸락눈이 강변을 때리는 영일만 칠흑빛 밤이천길 바다 속으로 침몰하면 오매불망질화로에 오순도순 불씨 다독이는 오누이 사랑이 무르익어간다시의 산책로 성탄절이 세계의 명절이 된 지는 오래다. 원래는 기독교의 절기이나 산업화, 현대화로 그 의미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겐 물론이고,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들에게도 큰 거부감 없이 다가서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성탄절을 한 달 정도 앞두면 기업들은 이와 관련된 이미지와 글귀로 수익 창출에 열을 올리고, 소비자들도 그 관행을 익숙히 받아들인다. 다만, 그럴수록 현대인은 성탄절의 본질과 동떨어지게 된다.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고, 이를 기념하고자 하는 초심(初心)은 저 먼 곳에서 그저 희미한 그림자로만 남을 뿐이다. 시의 화자(話者)는 성탄 전날, 즉 크리스마스이브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누이와의 옛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시 전체에 도도히 흐르는 ‘고독’의 강도가 작품을 압도하고 만다. ‘싸락눈’, ‘칠흑빛 밤’, ‘천길 바다’ 등의 시어가 동원되어 독자의 폐부에 박힐 만큼 고독의 색채는 강렬하다. 제2연의 ‘아무 소용없는 싸락눈이 강변을 때리는/ 영일만 칠흑빛 밤이/ 천길 바다 속으로 침몰하면’에 그 ‘고독’이 적나라하지 않은가. 인간의 고독이 발현하는 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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